나의 창작세계 詩集부분 "무늬"-이시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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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세속의 삶을 나는 주로 남의 시들을 읽고,고르고,평가하여 그것을 책으로 묶어내는 일로 지낸다.
편집자의 운명이란 참 묘한 것이어서 나는 내 손을 거쳐 나간「신인」들이 나보다 더 유명해지고 유능해져서 나를 압도(?)하는 신나는 장면들을 수없이 보아왔고 겪어왔다.기쁜 일이라면 한없이 기쁜 일이다.그러나 단 1회밖에 주어지지 않은 앞으로의 삶에 좀더 보람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나의 시를 쓰는 일이다.이번 시집 『무늬』는 말하자면 불혹의 삶을 넘긴 내가 남의 시가 아닌 바로 나의 시를 써보고자 하는 노력의 소산이다.『무늬』를 쓰는 동안 나는 주로 남의 시들로부터 떠나 산길이나 강길을 홀로 걸었다.숲속의 단독 산행(山行),참으로 고요하고 그윽하고 무엇보다 내 마음의 한없는 적요로움이 좋았다.그곳에서 나는 까막까치의 즐거운 노랫소리를 들었고 어린 소나무의 은은한 솔향기를 맡았고 잎새들의 천연스런 소곤거림을 들었다.
『깊은 산 골짜기에 막 얼어붙은 폭포의 숨결 내년 봄이 올 때까지 거기 있어라 다른 입김이 와서 그대를 녹여줄 때까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시인들이 있고,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들이 있지만 나는 나의 시가 지금 막 얼어 붙는 겨울 폭포의숨결을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생생히 되살리는 일에 기여하길 바란다.
李時英 〈시인.『창작과 비평』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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