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 '어린이 큰 손'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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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미술상 매리언 디펜보흐는 최근 자신의 갤러리를 찾은 수집가 한 명을 정중히 맞았다. 내실로 안내해 작품들을 보여주자 이 수집가는 백금제 코끼리로 장식된 5500달러짜리 자기 조각품을 골랐다. 디펜보흐는 "역시 작품을 보는 안목이 높다"고 고객을 치켜세웠다. 이 수집가는 올해 아홉 살인 다코타 킹이었다.

지난해 11월 뉴욕 소더비 경매장에서는 11세짜리 찰스 로슨이 유명 조각가 제프 쿤스의 작품에 35만2000달러를 불렀다. 3세 때부터 부동산업자인 아버지와 함께 쿤스의 스튜디오와 갤러리, 경매장과 미술시장을 다녔다는 그는 결국 원하는 작품을 손에 넣었다. 아버지 로슨은 "원하는 작품을 갖게 된 아들이 흥분한 나머지 다른 입찰에도 참여해 가격을 올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팽창해 규모가 60억 달러에 이르는 가운데 '어린이 미술품 수집가'가 늘고 있다고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이 최근 보도했다. 아시아와 러시아의 신흥 부호뿐 아니라 부유한 부모를 둔 어린이들이 미술시장의 중요 고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홉 살짜리 다코타 킹은 자기 손으로 40점의 작품을 수집했다. 증조부와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미술품을 수집하는 데 영향을 받은 다코타는 네 살 때부터 좋아하는 동물과 관련된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초창기 수집품으로는 판다를 소재로 한 앤디 워홀의 1983년 작품이 있다.

휴스턴의 미술 박물관에서는 12세인 홀랜드 채니가 부모와 함께 모은 아시아 작품들을 별도로 전시하고 있다. 홀랜드는 전시회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며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한다.

아들이 수집가인 애비 로슨은 "허영심일지 모르지만 아들이 예술을 좋아한다고 뽐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예술품을 자녀에게 신탁해 잠재적인 세금 혜택을 얻는 이들도 있다.

통상 아이들은 자신의 관심을 반영하는 작품에 관심이 많다. 이 때문에 동물이나 꽃.자동차.만화 같은 캐릭터가 담긴 작품의 인기가 높다. 부모들은 자녀가 고상한 취향을 갖는 것을 즐긴다.

소더비의 휴 힐데슬리 부회장은 "1961년만 해도 아이들을 경매장에 못 오게 했지만 요즘은 매번 10여 명의 아이들이 찾고 있으며, 입찰에 참여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뉴욕의 미술 딜러 사라 테치아는 "예술품은 예술가의 영혼인데, 13세 아이에게 비디오 게임 팔 듯 작품을 팔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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