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커리어 상담 ② IT 기업 9년차 프로그래머인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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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21면

한국코칭센터 고현숙 대표가 IT 기업에 다니는 김희철(가명) 팀장에게 커리어 상담을 하고 있다. [사진=신동연 기자]

●고민: 개발자의 한계를 넘고 싶지만

轉職은 NO, 현직서 CEO 돼라

“아무리 신기술이라고 해도 몇 년만 지나면 도태된다.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따라가지 못하면 후배에게 밀린다.”

IT 업계에서 일한 지 9년이나 됐지만 김씨는 갈수록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한다. 1998년 입사 당시 웹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그는 신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로 대우받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기술이 계속 바뀌고 신기술이 자꾸 나오는 바람에 경력이 오래됐다고 해서 후배보다 잘하는 것도,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후배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체력도 갈수록 달린다. 직종 특성상 야근과 밤샘이 많은데, 이제는 한 번 밤샘하고 나면 며칠 동안 힘들다. 김씨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라며 “IT개발자들은 입사 7~8년차 때가 절정기인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김씨는 지금까지는 직장생활을 잘해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정보시스템 구축과 인터넷 서비스 관련 업무 등을 거쳐 지금은 차세대 통신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동안 꾸준히 신기술을 습득해온 덕분이다. 주력 분야도 나름대로 확보해 놓았고 회사에서 능력도 인정받아 팀장 보직도 맡고 있다. 회사도 계속 성장하고 있어 자신만 잘하면 승진할 여지도 많다. 그러나 앞으로 10년이 문제다. 개발자의 수명이 짧아 40대 중반쯤 되면 개발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이후 경영자로 가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얘기다. 만약 개발 일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석·박사 학위를 받아야 하는데, 설사 받는다고 해도 쉽지 않다. 경영자로 가는 것도 힘들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아야 하는지, 현업(IT개발)을 관두고 마케팅이나 재무 관련 부서로 전직해야 하는 것인지, 기술 관련 석·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태산 같다.

●진단: 그의 강점과 약점

고 대표는 김 팀장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은 IT개발자가 아니라 경영자라고 단정했다. 노력 끝에 최고경영자(CEO)가 된다면 시대가 요구하는 최적의 경영자, 즉 기술 전문지식이 있는 경영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경영자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다. 이 점을 파악하기 위해 고 대표는 ‘해리슨 어세스먼트’라는 행동특성 평가를 실시했다. 이 평가에서 김 팀장의 강점은 기술전문성으로 드러났다. 기술계통 기업의 경영자가 되기에는 좋은 조건이다.

또 전략적 사고력과 분석력, 재무감각도 좋은 편으로 나타났다. 고 대표는 “기술자들은 특히 재무감각이 부족한 편인데 김 팀장은 이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서 “어떤 일을 평가할 때 돈이 되겠다, 안 되겠다를 직감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강하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경영자나 리더가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더 많다는 게 고 대표의 분석이다. 스스로 일을 꾸미거나 이슈를 만들어 추진하는 주도성이 부족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권한을 행사해서 부하직원들을 통솔하는 리더십 점수도 낮았으며,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라든가 자부심도 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의사결정을 할 때 돌다리도 두들기며 건너는 성향이 강했으며, 직관에 의한 결정이라든가 모험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은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법: 해외근무가 우선, MBA는 그 다음

김 팀장은 핵심 업무를 맡고 있는 데다 회사에서 해외연수도 보내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래서 전직은 생각지 말라고 고 대표는 충고했다. 현 직장에서 승진 가능성이 크고, IT경영자로서 경로를 밟을 기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건 그가 맡고 있는 개발관리자로서의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부족한 리더십을 채워 나가면서 중간관리자로서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도록 노력하라는 얘기다.

또 회사가 해외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근무는 장차 글로벌시대의 기술기업을 이끌어 가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고 대표는 해외근무 희망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충고했다.

고 대표는 또 이 분야 전문가끼리의 네트워킹에 적극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사람을 구할 때는 동종 업계로부터 추천을 먼저 받는다. 연후에 헤드헌터의 추천에 의존하고, 그래도 안 될 때 공모에 나선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 대표는 “만일 김 팀장이 시장에 나왔을 때 누군가가 기업 내부에서 김 팀장을 추천할 만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인맥관리가 돼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트워킹이나 사내에서 일을 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하라는 지적도 있었다. 회의에서도 가급적 자주 발언하고 제안하라고 권유했다. 업무 성과를 주기적으로 정리하고 지속적으로 발표하는 것도 팀장으로서의 리더십 확보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고 대표는 또 MBA 공부를 추천했다. 경영전략이라든가 재무, 마케팅 등 비기술 분야를 다루기 때문에 시야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IT개발자들은 MBA를 마친 뒤 금융이나 기업컨설팅 관련 직종으로 옮기는 일이 많다. 또 공부를 한다면 40세 이전에 마치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그러나 김 팀장의 경우 MBA와 해외근무 중 택일해야 한다면 해외근무를 택하라고 충고했다. 회사 일을 하면서 경영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컨설팅 받은 뒤 달라졌어요”

“그동안 막막했었는데 확신을 가지고 능동적인 액션 플랜을 짤 수 있게 되었다.”

컨설팅을 받고 난 김희철씨의 소감이다. 그가 짠 계획은 무엇일까.

첫째,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경력 정리를 하면서 자신이 지금 어떤 상태에 와 있는지를 점검할 생각이다. 가령 앞으로는 팀 내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중간관리자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또 이전에는 인맥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종 전문가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다.

둘째, 장단기 계획을 나눠 짜기로 했다. 여컨대 해외에서 일할 기회가 와도 평소 어학능력을 키워놓지 않았다면 잡을 수 없기 때문에 어학은 장기 계획을 세워 꾸준히 하기로 했다. 또 2년쯤 후에는 직장생활과 MBA를 병행할 계획도 세웠다. 장기적으로 재무나 기획 부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전직 생각이나 MBA 고민은 해결되더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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