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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사랑했을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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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12면

가을은 ‘사랑 영화 love story’의 계절이자 허진호의 계절이다. 허진호의 네 번째 사랑 이야기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다.

허진호 감독의 네 번째 사랑 이야기 ‘행복’

영수(황정민)는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기는 남자다. 심한 간경변에 걸린 상태에서 클럽은 망하고 애인인 수연(공효진)에게서 결별 선언을 당한 그는, 도망치듯 시골의 사설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내려간다. 은희(임수정)는 중증 폐농양으로 8년째 ‘희망의 집’에서 요양 중인 여자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요양원을 나와 함께 살게 되지만, 1년 후 은희의 헌신적인 간호로 건강을 되찾은 영수는 그녀 곁을 떠난다.

‘행복’은 이야기로만 보자면, 전형적인 최루성 신파 멜로드라마다. ‘행복’이라는 제목은 하나의 역설에 불과하다(누군가의 말처럼,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행복’은 일종의 ‘호스티스 물’ 또는 ‘호스피스 물’이다). 그러나 ‘행복’은 여전히 허진호 영화다. 허진호가 굳이 이 노골적인 신파적 이야기로 ‘사랑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여전한 허진호스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의문이 그의 전작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족과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멜로드라마
첫 두 작품(‘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과 나머지 두 작품(‘외출’과 ‘행복’)은 분명 다른 작품들로 보인다. 첫 두 작품은 분명 ‘사랑 영화’이지만, 동시에 ‘가족’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의 영화이기도 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막 시작되는 사랑의 감정(‘기대감으로서의 사랑’)은 죽음을 앞둔 남자 주인공의 허탈감/초연함과 미묘하게 공명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아릿한 아쉬움은 길게 남지만, 설레는 기대로서의 사랑은 끝까지 순수한 형태로 남는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처로서의 사랑’은 할머니의 죽음과 미묘하게 공존한다.

남자 주인공은 그 ‘상처’ 때문에 할머니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고, 그런 만큼 성숙하게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인다(영화평론가 이현경은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남성 성찰 멜로드라마’, ‘봄날은 간다’에 ‘남성 성장 멜로드라마’라는 적절해 보이는 이름을 주었다). 두 영화가 지니고 있는 성찰적인 분위기는 무엇보다 어떤 ‘공간들’에 빚지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초등학교 운동장과 낡은 사진관, ‘봄날은 간다’의 도시 주변의 역 대합실, 그리고 두 영화가 공유하고 있는 집 안의 마루. 향수의 대상이거나 정겹지만 사라져갈 운명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 상실과 체념의 공간들인 그곳들은, 그대로 인물들의 내면 풍경이 된다.

사랑을 탐색하는 영화들
허진호는 ‘외출’에서부터 일종의 변신을 한다(또는 그 변신은 ‘행복’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외출’보다 ‘행복’이 먼저 준비되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외출’ 이후 허진호는 오로지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작정한 듯하다. 전작들에서 중요한 서사적 모티브를 이루던 가족은 이제 배경으로 밀려나고, 그와 함께 예스러운 상실과 체념의 공간들도 함께 사라진다. ‘외출’에서 아버지(남자 주인공의 장인)는 배경 또는 두 남녀 사이의 사랑에 극적 긴장감을 부여하는 장치로서만 등장하고, ‘행복’에서 남자 주인공의 어머니는 영수라는 인물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서만 등장한다.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마루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으며, 인물들은 병실이나 여관방처럼 폐쇄적 공간 안에서 맴돈다. 그리고 두 남녀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질문과 탐색만 남는다.

사실 ‘사랑’은 단 한 가지 감정으로 정의될 수 없다. 그것은 때론 기대와 희망과 위안, 때론 의심과 불안과 질투가 지배적인 감정이 되지만,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이 공존하는 복잡한 감정이다. 모든 사랑에는 기대와 희망만큼 의심과 불안이 함께 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허진호는 ‘외출’에서 자기 의심으로서의 사랑을, ‘행복’에서 불안으로서의 사랑을 그려내는 데 집중한다. ‘외출’에서 두 남녀의 사랑에 놓인 장애물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있다. 그 이끌림이 일종의 복수 감정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 즉 자신의 감정의 순수성에 대한 의심이 그들을 주저하고 망설이게 한다.

‘행복’, 여자의 사랑 이야기
‘행복’은 여자 주인공의 ‘불안으로서의 사랑’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영화 속에서 은희의 눈빛과 몸짓은, 한 번도 완전한 ‘행복’에의 도취를 보여주지 않는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불행한 결말에 대한 예감을 지닌 채 사랑을 결행한다. 둘의 사랑이 시작될 무렵 영수는 은희에게 “은희야, 넌 내가 그렇게 좋니?”라고 묻는다. “응, 영수씨는?”이라는 은희의 대답과 질문에 영수는 “그런 게 있긴 있구나”라며 딴소리를 한다. 그 어떤 작품보다 전형화된 ‘행복’의 남자 주인공 영수라는 인물의 성격화는, 관객인 우리에게 그녀의 ‘불안으로서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허진호 감독의 전작에 등장했던 사진사·녹음기사·조명기사도 아닌 그는 직업적으로도 매우 예외적인 남성 주인공이다).

허진호는 그 성격화를 위해서 혼자 있는 그를 그 어느 때보다 폐쇄적인 공간 안에 밀어넣고(혼자 있는 그는 차 안, 지하 클럽 안, 오피스텔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의 모습을 허진호답지 않아 보이는 타이트한 화면과 빠른 편집으로 보여준다.
인물의 성격화 또는 인물의 내면 풍경의 형상화를 위해 공간적 배경을 성격화하는 것, 이것이 ‘절제된 또는 세련된 영상미학’이라 일컬어지는 그의 스타일이다. 그 스타일은 여전하지만 그는 변화하고 있다. ‘행복’에 특별한 징후가 있다면, ‘남성 멜로’를 만들던 그가(‘외출’은 ‘남녀 멜로’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 ‘여성 멜로’를 만들려고 한다는 점일 것이다.

‘행복’은 강한 의미에서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마흔 살 늦바람에 영화평론 공모에 응모했다가 ‘영화평론가’가 됐다는 변성찬씨.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공부하고 글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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