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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법원, 억울한 옥살이 '네 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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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5년 3월 강제추행과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모(43)씨는 여러 차례 재판에 빠졌다. 올해 6월 12일 자신에게 벌금 400만원이 선고된 재판에도 출석하지 못했다.

법원 직원이 실수로 김씨를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재판에 출두하지 않아 구속돼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였다.

김씨는 구치소에서 "왜 재판을 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구치소 측은 법원에 사실 여부를 문의했고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법원은 7월 13일 석방할 것을 통지했다. 벌금을 선고한 재판이 열린 지 31일이 지난 뒤였다. 김씨가 법원에 진정서를 내는 등 파문이 커지자 법원 직원들은 구속 기간을 제하고 남은 벌금 310만원을 대납했다. 위로금조로 100만원을 전달했다. 잘못을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석방지휘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검사가 하는 것"이라고 1차적인 책임을 검찰에 떠넘겼다.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으므로 검찰도 당연히 김씨의 구속 여부를 알았을 것"이라는 해명이다. 김씨가 구속된 상태인지 모르고 김씨 없이 재판을 진행한 책임은 재판부에 있지만 한 달 동안 '불법 구금'한 책임은 검찰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일각에서는 최근 신정아씨와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에 대한 영장이 잇따라 기각되자 검찰에서 법원의 실수를 슬쩍 흘렸다는 '음모론'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김씨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은 정윤재씨의 영장을 기각한 부산지법 염원섭 부장판사다.

그러나 김씨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법원의 해명은 아무리 봐도 궁색하다. 사회의 이목을 끄는 사건에서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김씨의 근거 없는 구금에 대해서는 '직원들의 단순한 실수'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원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법원 직원은 왜 김씨에게 위로금을 건네고 벌금까지 대납해 줬겠는가.

일반인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주요 사건 피의자 몇 명에 대한 영장을 기각한다고 법원을 '인권의 보루'로 떠받들지 않는다. 재판 과정에서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하는 노력이 쌓일 때 법원의 권위가 바로 설 수 있다. 김씨의 어이 없는 옥살이에 대해 법원은 해명에 앞서 '내 탓이오'라며 먼저 자성하고 나섰어야 했다.

박성우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