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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모부양 代價요구 할수없다-서울고법 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슬하에 아들 넷(장남 사망)과 딸 넷등 8남매를 둔 朴모씨(79)부부는 89년4월부터 셋째딸 집에서 살아왔다.
시장에서 해산물장사를 하면서 자식들의 도움없이 생계를 유지해오던 朴씨부부는 당시 부인 曺모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생활능력을 잃게됐기 때문이다.
병원에 한달간 입원했다 퇴원한 曺씨는 남편과 함께 셋째딸 집에서 방 한칸에 전세금 4백만원을 주고 함께 살게 됐다.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광주.인천에 각각 살고 있었고 서울에 사는 막내아들은 집이 좁아 같이 살 수 없었던 것이다.
셋째딸 부부의 부양을 받으며 살던 朴씨부부는 90년2월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성남시의 21평짜리 아파트를 4천3백80만원에 처분,셋째딸부부에게 맡겼다.그러나 넉달뒤인 같은해 6월 문제가 생겼다.朴씨부부가 광주에 사는 아들집으로 가 살기 위해 아파트 판 돈과 전세금을 돌려달라고 했으나 딸부부가 들어주지 않았다. 셋째딸부부는『광주에 가면 불편하니 계속 우리와 살자』며 돈을 내놓지 않다가 자신들의 새 집을 구입하는데 사용하는등朴씨부부의 허락없이 91년4월까지 아파트 판 돈을 다 써버렸다. 朴씨부부는 어쩔 수 없이 92년2월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러자 셋째딸부부는 37개월간 부양하면서 들어간 5천6백98만원의 부양비를 내놓으라고 반소청구로 맞섰다.셋째딸부부는 하루1만5천원씩의 파출부 고용비(1천6백65만원)와 한끼 6천원씩의 식비,방세(월 15만원),병원치료비및 약구입 비(월 30만원)외에도 우유.간식비.목욕비.이발비등 목록까지 법원에 제출했다. 재판 과정에서 양측 변호사는 물론 재판부도 화해를 유도했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부모.자식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갔고변호사마저 이를 보다못해 사임해 버렸다.셋째딸부부의 소송 대리인이었던 金모변호사가 1심 재판중이던 지난해 4월『 변호사로서더이상 떳떳이 소송행위를 할 수 없다』며 5쪽에 이르는 장문의대리인 사임계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朴容相부장판사)는 15일『생활능력을 상실한 부모 부양은 자식된 도리이자 의무』라면서 원심대로 셋째딸부부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피고들이 비록 부모를 부양하면서 얼마간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하나 부모뿐아니라 누구에 대해서도 부모부양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며『부모의 돈을 모두 돌려주라』고 셋째딸부부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재판이 끝난뒤 朴부장판사는『화해기일을 특별히 다섯번이나 주고조정을 유도했으나 결국 선고까지 하게 됐다』며『재판 결과를 떠나 부모.자식간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보면서 세상이 너무각박해져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생계능력이 없는 노부모 부양을 위해 싱가포르의 경우 최근 의회에서 이를 자녀들에게 의무화하는 법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鄭載憲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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