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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노풍' 같은 바람은 안 불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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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997년 대선 때 광주는 호남 출신인 김대중 후보에게 몰표를 줬다. 2002년 대선에선 영남 출신인 노무현 후보를 밀어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의 진원지가 됐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광주는 이명박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서 박근혜 후보를 누른 곳이다.

2007년 9월 추석 연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가 29일 광주.전남 경선을 앞두고 이 지역에서 살다시피했다.

광주의 한가위 민심은 예전 '정치 도시'의 열기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친척들하고 모여도 대선 얘기는 별로 없던데요. 동생은 대운하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좋아하는 것 같고, 형님은 별 말씀이 없으시고…."

25일 저녁 광천동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대구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김형모(44.자영업)씨는 이렇게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에 사는 자녀를 배웅하러 온 주부 김모(54)씨는 "눈 씻고 찾아봐도 대통령감이 없는데 뭘…"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무관심한 듯한 겉모습과 달리 상당수 시민은 신당 경선에서 누가 1위를 달리는지, 동원 선거 논란이 왜 벌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명박씨와 범여권 주자들이 워낙 차이가 나서 그렇지, 신당에서 후보가 나오면 힘을 얻게 될 거요. 이명박씨가 여그서 먹기는 힘들제." 이명석(59)씨는 광주의 시선이 범여권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당 주자들에 대한 선호는 엇갈렸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광주에서 6년째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김모(46)씨는 "손학규씨는 한나라당에서 밀어줘 경기지사까지 했으믄 거기 있어야 했고, 이해찬씨는 좀 독선적일 것 같다"며 "순창 출신인 정동영씨가 1등 한 게 그냥 됐겠느냐"고 말했다. 동원 선거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즈그들은 안 했간디"라고 말했다.

금남로에서 만난 김배철(43.회사원)씨는 "인물로만 보면 손학규씨가 낫다"며 "조직으로 경선을 치르면 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일행인 선수인(39)씨는 "원래 손 후보를 찍어주려 했는데 이명박씨와 겨뤄볼 사람은 이해찬씨밖에 없는 것 같다"며 "광주 경선에선 질지 몰라도 결국 이해찬씨가 다 합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거인단 투표로 실시되는 29일 경선과 관련해 신당의 광주시당 관계자는 "선거인단에서는 조직이 우세한 정 후보가 앞선다는 게 중론"이라며 "다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 인사들이 최근 손 후보를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게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역 오피니언 리더 그룹은 본선 구도를 염두에 두고 이해찬 후보 쪽으로 기우는 기류도 있다"고 소개했다.

이 같은 광주 민심에 대해 류한호 광주대 교수는 "호남은 범여권 후보들 중 안 될 것 같은 인물을 하나씩 지워가는 상황"이라며 "국가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점과 호남 출신이 그래도 낫지 않겠느냐는 두 가지 관점이 교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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