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후쿠다 내각의 외교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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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번 정변(政變)-12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총사임에서 25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내각의 성립까지-의 직접적 도화선은 7월 말 참의원선거에서 여당의 참패였다. 패인은 사회보험청의 놀랄 만큼 방만했던 운영, 지방경제 침체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정책의 실패, 각료들의 잇따른 부적절한 발언과 정치자금의 불투명성 등이었다. 즉 내치(內治)의 실패가 선거 패배의 최대 원인이었다.

 물론 마지막 단계에서 아베 총리의 심신을 극도로 지치게 한 것은 일 자위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급유를 가능하게 하는 ‘대 테러대책 특별조치법’의 연장 문제였다. 야당이 반대해 해결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러특조법을 포함해 일본의 ‘외교정책’이 아베 내각 및 자민당 정치에 대한 지지 하락을 몰고 왔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신 내각의 정책은 사회·경제정책에 중점이 두어질 것이다. 고령자나 소외된 지방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통해 정치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즉 새 내각에 있어 외교정책의 수정은 2차적인 것으로, 있어도 미세한 조정에 그칠 것이다.

 흔히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느냐 혹은 아시아를 중시하느냐 하는 식으로 설정하는데, 이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는 쉬울지 모르나 실태의 해명이라든가 장래에 대한 예측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야당인 민주당을 비롯,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들은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 대책에 참여하는 것은 곧 ‘미국 추종’이라는 논법으로 공격하길 즐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른 여러 실책을 감안하면 이 전략은 성공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을 비판한 프랑스·독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적극적이다. 일본보다 더 큰 역할을 기대하고, 또 자처하고 있다.

 최근 유엔 안보리에서 아프간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아베 및 그 후계 내각에 대한 격려의 의미가 담겨 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근저에는 국제테러,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공유하고 있는 국가들 간의 합의가 있다. 일본의 새 내각이 그 기본적 합의에 등을 돌리고 독자노선을 택할 가능성은 없다.

 설령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해도 이 같은 상황에는 변화가 없다. 잘못 판단해 당리당략의 도구로서 사용하려 한다면 민주당도 머지않아 자멸하고 말 것이다.

 대외정책에 있어 ‘아시아 중시론’이라는 건 ‘미국 추종’ 반대론자들이 즐겨 쓰는 도구다. 국제사회의 기본적 합의를 미국의 헤게모니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 논법(아시아 중시론)이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 핵확산 저지를 위해 6자회담의 성공에 승부를 걸고 있는 국가들의 합의에 앞서 일본이 국제사회에 새로운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아시아주의적 대외 노선을 추진했을 때의 이점이란 아무 것도 없다. 중국 문제나 6자회담에 임하는 후쿠다 내각의 정책에 큰 변화가 생길 여지는 거의 없다고 본다. 이는 신 내각의 각료로 임명된 고무라 외상, 이시바 방위상 등의 면면을 봐도 알 수 있다.

 또 납치 문제에 힘을 쏟아 온 아베 내각이 후쿠다 내각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압력에서 대화로 일본의 외교가 크게 항로를 바꾸기도 힘들다.

 그렇다면 후쿠다 내각이 앞서 말한 두 가지, 즉 테러·대량살상무기의 확산방지에 관한 국제사회의 기본적 합의를 지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목적으로 결속하고 있는 6개국과의 협조도 해치지 않으면서 아시아에서 이미지를 개선하는 정책은 무엇일까. 이는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이 될 것이다.

 33년 전의 ‘후쿠다 독트린’을 계승하는 형태로 후쿠다 내각이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며 아시아 중시의 자세를 취하게 되면 일본 내 여론으로부터도 환영받을 것이다.

와타나베 아키오 평화안전보장연구소 전 이사장·도쿄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