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순례>5.정선아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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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나는 민요를 좋아해 틈이 나면 민요를 듣는다.특히 좋아하는 노래는『정선아리랑』이다.가락에 밴 깊은 우수가 좋고,소박하면서도 정감있는 노래말이 좋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게.싸릿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본조 정선아리랑의 한 대목으로,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멀리서 꾀꼬리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사이사이 나무 찍는 소리가 좁은 산골짜기를 울리는 것 같다.가락이 구성 지면서도 어둡지 않고 밝은 것은 이 노래가 생겨난 旌善의 풍광과 인심 탓이리라.내가 특별히 정선아리랑을 좋아하는데는 사연도 있다.어릴적내가 자주 나가 놀던 강에는 이른 봄이나 초가을이면 으레 뗏목이 떠 있곤 했다.
뗏목은 열대,다섯대씩 떼를 지어 내려갔는데 느릿느릿 떠가는 뗏목 위에서 뗏목꾼들이 돌려가며 목청을 뽑아 노래를 불렀다.뒤에 안 일이지만 그 노래가 바로 정선아리랑이었다.내가 정선아리랑을 들으면서 물에 잠길듯 힘겹게 바위너설을 에도 는 뗏목이며,늙은 소나무 위로 높이 뜬 하얀 솜구름을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정선아리랑을 좋아하는 더 큰 이유는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아우라지 강가에라도 나가 선듯 마음이 맑아져서다.또 늙은 뱃사공과 민물고기조림을 가운데 놓고 막걸리 사발이라도 돌리는듯 마음이 편해지기도 해서다.
본조와 대를 이루는,빠른 속도로 사설을 엮어 부르는 『엮음아리랑』도 또한 나는 좋아한다.『…창밖의 저 두견은 피나게 슬피울고 무심한 저 구름은 달빛조차 가렸으니 산란한 이내 심사 어이 풀어볼까….』엮음아리랑은 역시 전문노래꾼이 부르 는 것이 제격이다.
듣기에 따라 조금은 유치한 노래말에는 그러나 산골 삶의 고달픔이 스며있고,자연에 대한 소박한 경탄과 어울림이 배어 있다.
무엇보다도 엮음아리랑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시집살이의 아픈 눈물이 있고,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젊은 아낙의 한숨이 있다.철따라 찾아오는 소금장수를 기다리는 산골 처녀의 그리움이 있고,소나무에 도끼를 꽂는 젊은이의 주체할길 없는 힘과 이룰 수 없는 꿈이 있다.소쩍새 우는 달밤의 꿈같은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다.정 선아리랑은 내게는 노래이기이전에 내 정서의 깊은 샘이다.
음반은 레코드회사마다 펴낸 민요집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신나라레코드의 복각판에는 1930년께 부른 金玉心의 소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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