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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사진작가… 대담한 모델…/남성누드전 관람객 절반이 여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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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여자누드화 첫 등장후 78년만에 「벽」깨/「정면」 피했지만 사회 성의식변화 입증
30대 처녀사진작가가 남자 알몸을 찍은 사진만으로 전사회를 열었다. 국내 처음인 남성누드 사진전이다. 하루 1백명이상 관람객이 몰리고 그중 절반가량은 대학생을 비롯한 여성이다.
남성우월주의 유교문화의 전통이 강한 우리사회에서 종래 관념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망칙스런」행사와 현상이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의 육체는 여체에 못지않은 미적 탐구의 대상입니다. 아무도 다루지 않은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싶었어요.』
여성사진작가 안경심씨(34)는 『처녀가 남성누드 전을 열었다는 이유때문에 「화제성 전시회」로 전락할까봐 걱정했는데 관객들이 진지한 감상태도를 보여 만족스럽다』며 우리사외의 성의식 변화를 확인하고 있다.
1일부터 15일까지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파인힐 화랑에는 그가 92년부터 긴 구상과정을 거쳐 완성한 23점의 남성누드사진이 전시됐다. 안씨 작품의 특징은 통상 남성미로 인식되는 근육질의 육체가 아니라 보통남자들의 부드러운(?) 알몸을 절제된 구도로 묘사 한것. 정면이나 모델의 얼굴이 나오는 작품은 없다.
『현대사회의 여성화되어가는 남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되 음영이 강조된 표현으로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다』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여자의 누드만 예술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남성들의 편협한 이기주의 아닌가요. 남자누드도 감상할만 한데요.』 3일 오후 전시장서 만난 S여대 이모양(23)은 안씨의 의도에 부응하듯 남성누드가 전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이다. 일부 쑥스러운 표정의 관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여성관객들은 남성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런 관람태도였다.
작가 안씨는 『모델을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한시간에 최하 20만원을 달라고해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어려움이었을뿐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각 미술대학을 통해 직업남성누드모델을 필요한대로 구할수 있었으며 모델들도 자신의 작업을 거부감없이 받아 주었다는 것이다.
당돌한 여성작가와 대범(?)한 남성모델,그리고 스스럼없는 여성관객­. 여성들이 「보여지는 성」「선택되는 성」을 추구하는 성문화의 변화가 우리사회에서도 뚜렷한 현상으로 떠오른 셈이다.
일본의 경우 최근 27명의 직장남성 누드사진을 게재한 문예춘추 자매지 「클레어」 6월호가 주로 여성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매진됐다. 특히 이 잡지의 남성누드모델 공모에 예상을 깨고 50여명이나 되는 지원자가 몰려 화제였다.
전문가들은 『고용과 사회적 역할 등에서 여성의 비중이 크게 높아지고 성의 영역에서 남녀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데 따른 필연적인 현상』이라며 『유교문화권에서도 머지않아 서구처럼 일과 성 모두에서 「남자보다 강한 여성」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성신여대 서양화과장 송미숙교수(50·미술사)는 『안씨의 사진전은 구미 여러나라에서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페미니즘 미술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페미니즘 미술의 본뜻을 살리지 못하고 겉모습만 찾을 경우 자칫 여성에 의한 새로운 성의 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누드화는 1916년 동우 김권호화백이 일본 문전에 출품해 특선한 여성누드 「석모」가 처음. 당시 매일신보는 「김군의 그림사진이 도착했으나 벌거벗은 그림인 관계로 신문에 게재치 못한다」는 해명을 붙여 보도했다. 80년 새세상은 너무많이 변한 셈이다.<표재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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