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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컨만 있으면 우리집도 멀티플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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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추석 연휴는 영화 보기에 좋은 때다.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났지만 딱히 화제도 없고, 책을 읽자니 집 안이 소란스러워 집중이 안 되기 쉬운 탓이다.
기나긴 추석 연휴를 위해 TV 편성표를 챙기고 리모컨 주도권을 확보해 두자. 멀티플렉스가 부럽지 않은 다양한 영화들이 TV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감독 피터 잭슨 주연 일라이저 우드·비고 모텐슨
22일(토) 밤 12시25분-SBS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가 시작한 모험의 두 번째 이야기. 세상 모든 악을 지배하는 절대반지를 파괴하고자 여행을 떠났던 프로도(일라이저 우드)와 반지 원정대는 서로 흩어져 절대악의 화신 사우론을 저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한다. 프로도와 샘은 반지를 파괴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모르도르로 향하고, 아라곤(비고 모텐슨)과 나머지 동료들은 사우론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로한 왕국에 들어간다. 그리고 헬름 협곡의 전투가 시작된다.
‘반지의 제왕’ 3부작은 일반적인 시리즈 영화와 달리 한꺼번에 제작됐기 때문에 속편이 전편보다 못하다는 징크스가 적용되지 않는 경우에 속한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은 세 편 중에서 평가가 낮은 편이지만 그것은 질의 차이라기보다 서두와 결말 사이에 위치한 숙명 탓이다. 오르크 군대가 평원을 뒤덮는 장관이 볼 만하다. 23일 자정 삼부작 마지막 영화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이 상영된다.

우주전쟁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주연 톰 크루즈·다코타 패닝
23일(일) 밤 9시55분 SBS

스티븐 스필버그가 H. G. 웰즈의 SF소설 『우주전쟁』을 독창적인 시각으로 각색했다. 이혼한 항만 근로자 레이(톰 크루즈)는 전처와 자식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다. 주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아들 로비와 딸 레이첼을 집에 데려온 레이는 느닷없이 괴물의 습격을 받고 아이들과 함께 달아난다. 거대한 머리에 다리가 셋 달린 괴물들은 우주에서 침입해온 외계인들. 아버지로서 책임도 존재감도 인정받지 못했던 레이는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조금씩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E.T.’ ‘미지와의 조우’ 등에서 기존 SF영화와는 전혀 다른 외계인을 창조했던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에서도 외계인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 영화에서 낙지 모양 기계를 조종하며 지구를 파괴하는 외계인들은 인간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관계를 재확립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레이가 아버지이자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 그럼에도 묵시록을 재현하는 듯한 스펙터클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열혈남아
감독 이정범 주연 설경구·조한선·나문희
23일(일) 밤 11시35분 KBS2

성격이 더러운 건달 재문(설경구)은 소년원에서 함께 자라 유일하게 정을 붙이고 살던 민재를 눈앞에서 잃고 만다. 재문은 조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재를 죽인 반대파 조직원 대식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하고, 후배 치국(조한선)과 함께 벌교로 내려간다. 대식의 고향인 벌교에선 그의 어머니 점심(나문희)이 혼자 국밥집을 열고 있다. 대식이 읍내 체육대회에 들르기를 기다리면서 국밥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재문은 뜻하지 않게 점심과 정이 들기 시작하고, 치국 또한 무섭기만 하던 재문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된다.
탄탄한 데뷔작인 ‘열혈남아’는 장르영화의 기본과 더불어 ‘영웅본색’ 같은 1980년대 홍콩 누아르를 떠올리게 하는 인정도 지니고 있는 영화다. 파멸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복수로 향해 갈 수밖에 없는 건달의 의리, 시멘트 담벽처럼 스산한 세상에서도 갈라진 틈새로 피어나는 사람의 정, 통속적이고 덧없는 로맨스. ‘열혈남아’는 여기에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모정을 더하여 마음 끌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타짜
감독 최동훈 주연 조승우·백윤식·김혜수
24일(월) 밤 9시30분 KBS2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청년 고니(조승우)는 자신이 일하는 가구공장에서 화투판에 끼어들어 한탕을 노리지만 누나의 이혼 위자료까지 날리고 만다. 그를 구해준 사람은 전설적인 타짜 평경장(백윤식). 평경장에게 화투 기술을 전수받은 고니는 그와 더불어 지방 원정을 다니면서 도박판을 굴리는 큰손 정마담(김혜수)을 만난다. 그녀가 설계한 도박판에서 큰돈을 따고 애증이 섞인 관계를 맺게 된 고니는 적당한 시점에서 손을 떼라는 평경장의 가르침을 지키지 못한 채 차츰 화투에 중독되어 간다. 그리고 악명 높은 타짜 아귀(김윤석)를 만나기에 이른다.
허영만의 만화가 원작인 ‘타짜’는 최동훈 감독이 데뷔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보여준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악순환을 한층 밀도있게 파고든 작품이다. 플롯의 기교가 돋보이는 ‘범죄의 재구성’에 비해 추악한 욕망을 극대화한 캐릭터와 스토리를 밀어붙이는 강단도 높아졌다. 최근 속편 제작 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천하장사 마돈나
감독 이해영·이해준 주연 류덕환·백윤식
25일(화) 밤 9시30분 KBS2

무겁고 민감한 소재가 될 수 있는 트랜스젠더를 사춘기의 꿈처럼 발랄하게 펼쳐놓는 영화. 그러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 및 정체성을 향한 갈망과 같은 중대한 인생사를 놓치지 않은 성과가 돋보인다.
뚱뚱한 몸이 콤플렉스인 고등학생 동구(류덕환)는 마돈나의 노래 ‘Like a Virgin’을 들으면서 여자가 되는 날을 꿈꾸는 소년이다. 성전환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구는 술 마시고 주먹을 휘두른 아버지의 합의금을 대느라 큰돈을 날린다. 모자라는 돈은 500만원. 동구가 타고난 씨름선수라는 사실을 알아본 씨름부 감독(백윤식)은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폭력을 싫어하는 동구에게 씨름부로 들어오라 유혹하는데, 마침 ‘인천시 배 씨름대회’ 고등부 우승 상금이 딱 500만원이다.
몸은 남자이되 마음은 여자인 탓에 샅바 두르기를 부끄러워하고 온갖 여성적인 자태로 씨름부 선배들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 동구의 코미디가 부담스러운 소재를 친근하게 만들어준다.

사생결단
감독 최호 주연 황정민·류승범
26일(수) 밤 12시35분 MBC

마약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나이들의 세계를 거친 톤으로 그려낸 영화다. 마약 중간판매상 상도(류승범)는 물좋은 구역을 관리하면서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 때마침 첫눈에 반한 여자도 생겼다. 그러나 마약계 거물 장철에게 동료를 잃은 도경장(황정민)은 장철을 체포하고자 상도의 약점을 잡아 끄나풀로 이용하려고 한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위태로운 공생관계를 맺은 두 남자. 지독하게 증오하면서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던 상도와 도경장은 장철에게 마약을 제조하여 대주는 ‘교수’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위험한 운명으로 다가간다.
최호 감독이 부산지역 마약상들을 취재해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생결단’은 그런 사실성을 장르영화의 형식미로 포장한 솜씨가 돋보이는 영화다.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양날의 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는 것. 대도시 부산을 낯선 빛깔로 채색한 촬영과 조명, 황정민과 류승범이라는 걸출한 배우의 만남과 열연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극장에서 만나는 추석영화



손에 손을 잡고, 우리는 영화 보러 가요

이번 추석 극장가는 취향과 세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편이다. 중년 관객이 눈여겨볼 만한 영화는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음악영화 ‘즐거운 인생’이다. 생활에 치여 살던 세 남자가 대학가요제 수상의 꿈을 불태웠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록밴드를 결성하는 이야기. 추억의 노래 ‘불놀이야’만으로도 중년의 심금을 울릴 만하다.

사나이 인생에 여자를 걸림돌처럼 보는 이 영화의 어조에 불만이 있는 여성 관객이라면 여장부가 등장하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으로 마음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지능지수도 배포도 부족한 세 명의 납치단이 국밥집 재벌 권순분 여사를 납치하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은 지루해질 만하면 한번씩 웃음을 터뜨려주면서 인질과 납치범이 뒤바뀐 상황의 코미디를 끌어낸다.

추석엔 역시 코미디다. ‘두사부일체’의 제3편 ‘상사부일체’는 교체된 출연진과 미지근해진 웃음이 낯설지만, 언제부터인가 추석에 조폭 코미디 영화를 보지 않으면 마음이 허전하기도 하다. 웃음이 있다면 눈물도 빠질 수 없다. 실화를 각색한 ‘마이 파더’는 미국으로 입양되어 성장한 청년이 살인죄로 사형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찾아오는 눈물범벅 드라마다. 다니엘 헤니의 열연은 서늘한 가을 훈훈하게 마음을 데워준다.

추석은 젊은이들이 친척 어르신들을 피해 극장으로 탈출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봉태규와 정려원이 출연한 ‘두 얼굴의 여친’은 바로 그들을 위한 영화다. 다중인격장애가 있어 귀엽다가도 포악해지는 여자친구의 이야기.
좀 더 정통에 가까운 멜로를 원한다면 ‘친구’의 곽경택 감독이 연출한 ‘사랑’이 대안이 될 만하다.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랑’은 제목 그대로 ‘이것이 사랑이다!’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추석 극장가에서 거의 유일한 외화인 ‘본 얼티메이텀’은 과년한 싱글과 집안일에 시달리는 며느리들의 스트레스를 한번에 날려줄 수 있는 호쾌한 액션영화. 모처럼 극장 나들이에 나선 가족이라면, 그런데 서로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다르다면, 가장 무난하고 일반적인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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