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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원링 스팸' 교묘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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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직장인 김태석(35)씨는 요즘 회의중에도 벨이 딱 한 번 울리고 끊어지는 휴대전화를 종종 받는다. 이런 전화는 대개 ‘01X’로 시작되기 때문에 영업을 하는 김씨로서는 혹시나 고객이 아닐까 싶어 발신번호로 급하게 전화를 건다. 하지만 그 전화 대부분이 돈을 빌려 쓰라는 ‘쓰레기(스팸)’ 전화다. 그는 “예전에는 발신번호가 ‘060’ 등으로 찍혀 있어 안 받고, 안 걸 수 있지만 요즘엔 스팸 전화가 점점 교묘해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이처럼 전화 걸기를 유도하는 대출관련 ‘원링(one-ring)’ 스팸이 기승이다. 최근 정보통신부가 올 상반기 ‘휴대전화 스팸 트랩’으로 무작위로 조사한 결과 대출 스팸은 1만1130건으로, 지난해 상반기(9068건)보다 22%나 늘었다. 휴대전화 스팸 트랩은 정부가 가상의 전화 번호들을 만든 뒤 이들 번호에 들어오는 스팸 전화를 적발하는 시스템이다. 올해 조사에서는 특히 원링 스팸이 눈에 띄게 급증했다.

정통부가 지난해 상반기 스팸 트랩번호 1000개를 운영해 확인한 원링은 192건(10개당 1.9건)이었으나 올해 번호를 4000개로 늘리자 2498건(10개당 6.2건)의 원링이 적발됐다. 원링 스팸은 발신자(스패머)의 추적도 쉽지 않다. 발신번호가 정상적인 휴대전화 번호이지만 일반 전화로 거는 게 아니다. 이들 전화는 대부분 스패머들이 일정액의 통화료를 먼저 내고 쓰는 ‘임시폰’(선불폰)이다. 스패머들이 주로 외국인들만 쓰게 돼 있는 선불폰을 범죄의 도구로 악용하는 것이다. 여기다 이들은 여러 단계의 착신전환 기능을 해놔 번호 추적을 어렵게 만든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KISA)의 임재명 스팸대응팀장은 “이번 조사에서 대출 스팸번호의 절반이 착신전환으로 추적을 피하려 했고, 심지어 두 단계 이상의 착신전환을 한 스팸이 200건이 넘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통부는 원링 등 스팸전화를 근절하기 위해 ‘정보통신망법’을 고치기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선불폰의 악용을 막고, 처벌 규정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원링의 경우 단 1회 적발이라도 해당 번호를 쓰지 못하게 하고, 선불폰 가입자에게는 착신전환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정통부는 올 들어 스팸을 대량 발송한 스패머 11명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이원호 기자

◆스팸(spam)=광고 등의 목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수신인에게 원하지 않는 통화나 문자메시지, e-메일 등을 유무선 전화나 인터넷으로 보내는 행위. 이런 범법 행위를 하는 사람을 스패머라 부른다.

◆착신전환=전화 수신인이 가정이나 사무실을 비울 때 그 번호로 걸려오는 통화를 휴대전화나 다른 유선전화로 자동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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