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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는] 제주 자연파괴 두고만 볼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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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반도 남단, 아름다운 섬 제주에 불도저의 굉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경제논리와 개발이란 이름으로 깎고, 자르고, 파헤쳐 왔다. 드디어 제주섬에도 고속도로가 뚫렸다. 조용한 중산간 마을 납읍에 마을을 관통하는 4차로 도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3백년 된 팽나무가 잘려나가고 돌담이 사라졌다.

도(道)나 정부는 한라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하고 골프장 등 대단위 리조트까지 조성할 기세다. 이젠 녹나무.먼나무.조록나무며 또 구상나무.무주나무.시로미 등 수많은 제주 땅이 키워내는 나무며 자생식물들을 한가롭게 볼 날도 멀지 않은 듯하다.

새 정부는 제주국제자유도시다, 제주개발을 위해 5년간 8조8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등 개발계획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 같은 장밋빛 유혹 때문인가. 주민들은 환경이 파괴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속도로 건설에 동의해 주었다. 나무와 돌담이 만들어 주던 제주 마을의 정겨움과 아늑함을 주민들은 오르는 땅값과 바꿨던 것이다.

역대 정부는 제주개발특별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동안 섬을 무차별 훼손해 왔다. 그 법은 "제주도민이 주체가 되어 제주도의 향토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고 자연 및 자원을 보호하며…"라고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쾌적한 생활환경 및 관광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제주도민의 복지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도민의 복지향상을 위한다는 명목하에 관광을 위한 대내외 투자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제주는 오랜 세월 육지사람들에게 '환상의 섬'으로 불려 왔다. 한반도 제일 남단에 위치하고 있어 열대식물종이 서식하고 섬 복판에는 1천9백50m나 되는 높은 한라산이 솟아 있어 한대림.온대림.난대림, 그리고 고산식물까지 자생하고 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 속 생명까지 생각하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생명체의 보고(寶庫)이고, 따라서 틀림없는 이 땅의 보물섬이다. 그런 제주가 안타깝게도 이젠 회복조차 어려운 상태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1885년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피어스는 지금의 워싱턴주에 살던 수와미족 추장 시애틀에게 그의 땅을 팔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애틀 추장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당신들은 어떻게 저 빛나는 솔잎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두침침한 숲 속의 안개며, 신선한 공기와 반짝이는 개울물을 사고 팔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그 성스러운 것들을 말입니다.

당신들은 분명히 왕성한 식욕으로 대지를 마구 먹어치운 다음 그것을 황무지로 만들어 놓을 것입니다. 성스러운 숲 속이 인간의 냄새로 가득 차고, 산열매가 익는 언덕이 인간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질 때면 그것이 바로 삶의 종말이요, 죽음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쏙독새의 아름다운 새소리나 한밤중 연못가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산다면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욕망의 충족을 위해 한시라도 멈춰 설 줄을 모른다. 더 많은 돈, 더 빠른 길, 더 크고 편리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영원히 간직해야 할 가치있는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하고 있다.

육지인들은 무엇을 보려고 제주에 오는가. 제주인 역시 삶에 웬 속도와 돈이 그리 필요할까.

제주섬이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 누구나 동경하는 '환상의 섬'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정부나 도(道) 역시 시애틀 추장의 간절하고도 준엄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어느 것이 진정 제주도와 도민을 위한 길인가를 깊이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홍성직 제주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