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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샌드위치코리아] 소득 3만 달러로 가는 지름길 “금융허브 육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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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금융 중심가의 야경. 홍콩은 최근 급부상한 상하이에 기업공개(IPO) 시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자본시장 관련법을 통합하고 역외금융업에 세금을 깎아주며 외국 금융회사를 불러들였다. [중앙포토]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펀드시장 규모가 가장 큰 곳은?
 ①홍콩 ②일본 ③호주 ④중국  
 위 문제의 답은 3번 호주다. 호주의 자산운용시장은 2004년 말 현재 6350억 달러로 미국·프랑스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싱가포르·홍콩를 추월한 지 오래다.

호주의 금융산업은 지난 10년 동안 연 평균 5.3%씩 성장했다. 이는 연 평균 경제성장률 3.6%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덕분에 호주는 전통적인 농업 강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금융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간 호주를 괴롭혔던 실업과 고임금이라는 두 가지 문제도 한 번에 풀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하면서 제조업만으로는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어렵게 되자 세계 각국이 금융 개혁에 나서고 있다. 고용도 늘리면서 고임금도 해결할 수 있는 금융산업에서 블루 오션을 찾자는 것이다.

 

◆농업국에서 금융 강국으로 변신한 호주=농업 강국이었던 호주도 세계적 무역 자유화 물결로 인해 농업만으론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내기가 어려워졌다. 재정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실업률은 치솟았다. 고심하던 호주 정부는 금융산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영국 법을 벤치마킹해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FSRA)을 제정했다. 호주의 FSRA는 영국과 달리 자본시장 칸막이를 없애는데 초점을 맞췄다. 증권사와 투신사 간 인수합병(M&A)이 봇물을 이루고 세계적인 자산운용사가 잇따라 시드니에 둥지를 틀었다. FSRA 제정에 앞서 호주 정부가 종업원 연봉의 9%를 강제로 연금에 가입하게 한 조치도 호주의 펀드시장을 폭발적으로 키우는데 한몫했다.

재정경제부 김석동 제1차관은 “우리가 제정한 자본시장통합법의 모델은 호주 FSRA”라며 “도로·항만 건설에 투자하는 인프라펀드는 호주가 세계에서 가장 발달돼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 쟁탈전=중국을 등에 업은 상하이와 베이징이 급부상하자 홍콩과 싱가포르가 몸이 달았다. 홍콩·싱가포르는 2002년 10여 개의 자본시장 관련법을 통합한 증권선물법을 각각 제정했다. 기업공개(IPO) 시장을 상하이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홍콩은 역외금융업에 세금을 깎아주며 외국 금융회사를 붙들었다. 외환 거래로는 아시아의 맹주인 싱가포르도 세금 감면과 규제 개혁을 통해 헤지 펀드를 끌어들이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선 두바이가 금융클러스터(DIFC)를 구축해 중동의 금융 허브로 자리 잡았다.

KOTRA 오태영 해외투자진출팀장은 “9·11 테러 후 싱가포르는 중동 오일달러가 미국·유럽으로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발 빠르게 중동 자본을 유치하는 순발력을 보였다”며 “단순히 빌딩만 지어놓는다고 외국투자가가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도 기회는 있다=한국은 조선·반도체·철강·석유화학 수출에서 세계 5위 안에 드는 수출강국이다. 그만큼 달러가 많이 들어오고 나가기 때문에 금융산업을 키울 토양은 비옥한 편이다. 무한한 중국시장도 바로 옆에 있다. 게다가 제조업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처지다. 금융산업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동집약적 중소기업은 국내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고, 대기업은 사람을 줄이는 자동화 투자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 제조업에만 의존해선 치솟는 실업과 양극화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전광우 딜로이트코리아 회장(국제금융대사)은 “금융은 사람이 하는 서비스업이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실업과 고임금을 풀 열쇠”라며 “금융산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한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 시대로 가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박사는 “최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선진국 금융회사가 타격을 입는 바람에 우리로선 상당한 시간을 벌었다”며 “이 호기를 놓치면 동북아 금융 허브라는 목표 달성은 더 요원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경민·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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