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24시>신발공장에 다니는 아프리카 청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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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존 카요데씨(21)는 검은 대륙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에서 온젊은이다.
서울올림픽소식을 통해 고도성장국인 한국을 처음 알았다는 그는지난해 10월15일 설레는 가슴을 안고 한국땅을 밟았다.
그의 고향은 영국식민지와 英연방국을 거쳐 지난 60년 독립한신생 나이지리아의 수도인 항구도시 라고스市.소규모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외국행의 꿈을 키웠던 그는 지난해 1월 고등학교를 졸업한뒤 한동안「어디로 갈것 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많은 친구들이 가까운 유럽으로 떠나지만 나는 같은 값이면 먼 곳으로 가서 아예 고향생각을 떨쳐버리고 일에 파묻히려는 생각으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 오게 됐습니다.』 카요데씨가처음 갖게된 일자리는 서울근교의 한 농촌마을에 있는 양계장.
꼭두새벽부터 닭에 모이를 주는 일부터 분뇨를 치우는 일까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했다.일종의 머슴이었던 것이다.
도시출신인 그에게는 생소하기만 했지만 한달에 40만원의「고소득」이 보장되는 일인만큼 최선을 다했다.
나이지리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면서 주인집 가족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고 난생처음 일하는 보람도 느꼈다.
그러나 뜻밖의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常夏의 대륙에서 온 아프리카청년이 처음겪는 겨울날씨속에 실외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결국 두달도 채 못버티고 지난해 12월5일「첫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의 허름한 여관에 머물면서 일자리를 찾아나선 끝에 12월23일 현재 다니고 있는 성남의 신발공장에 취직했다.
많은 숫자가 들어와있는 필리핀등 동남아국가 출신 노동자들은 자체 소식지까지 만들고 취업과 외국인 출입국관련 정보를 수시로교환하고 있지만「소수파」인 아프리카인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카요데씨는 매주 일요일 이태원에서 아프리카출신끼 리 모임을 갖고 공동체구성을 꿈꾸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공장은 종업원 50명중 9명이 외국인이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나이지리아인인 동료 존 엠마뉴엘씨(24)와함께 자취하고 있다.
예바공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엠마뉴엘씨는 국영기업체에서 5년간 일한 공무원이었다.
이들은 다른 한국인 동료와 똑같이 잔업을 포함해 하루 10시간 정도를 일하지만 임금은 월평균 50만원으로 20만~30만원적은편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더운 낮시간에는 일을 하지 않아 하루 근무시간이 6시간정도에 불과합니다.지금은 하루에 10시간씩 일하는데 익숙해 있지만 처음엔 도저히 못버틸 것같았어요.』 카요데씨는 돈을 벌어 대학을 졸업한뒤 정치가로 대성하는 것이 꿈이다.
공무원출신인 엠마뉴엘씨는 부정부패와 지연.혈연으로 얽힌 관료조직.행정비능률등을 혐오하고 있다.그의 꿈은 사업가가 되는 것이다. 두사람은 하루종일 같은 직장에 있어도 말한마디 나눌 여유가 없다.하지만 큰 꿈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은 매일 저녁 자취방에서 조국의 미래를 이야기할 여유는 잃지 않고있다.
〈李夏慶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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