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레 자식 그르친다/“유산 물려주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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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분의 2 이상을 사회환원/각계 2백60명 10년째 모임/회원 5명은 이미 실천
『자식은 키워서 뭐하나.』 『재산은 모아 어디 쓰나.』 유산상속을 노린 패륜범행의 사회적 충격파가 부모들의 허탈한 독백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일생동안 피땀흘려 모은 재산을 사회로 환원하자는 「유산 안물려주기」 운동이 10년째 조용히 확산돼 또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사회에서 번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기보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 사회로 환원하자는 것이 이 운동의 기본취지입니다.』
이 운동의 발기인 대표였던 김경래씨(67·전 경향신문 편집국장)는 『이번 사건에서도 많은 돈이 결코 자녀의 행복을 보장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대일수도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이 모임은 84년 4월 한국기독교 1백주년을 맞아 기독교 실업인 성경공부모임인 「서울기독실업인회」가 실시한 초빙강연에서 『소유에 대한 올바른 윤리의식을 확립하자』는 손봉호 서울대 교수의 주장이 계기가 됐다.
강연에 참석했던 김 전 편집국장·최태보 한국유리공업 회장 등 손 교수와 뜻을 같이한 3명이 『우리부터 죽을 때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대신 사회로 돌리자』고 결의한 것이다.
4명에서 출발한 이 운동은 점차 사업을 하는 기독교인들중에서 동참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89년부터 종교의 벽을 넘어 교수·법조인 등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한 일반인들의 참여도 늘어나 현재는 비기독교인 회원이 전체의 40%다. 현재 회원은 모두 2백60명. 회원명단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50대 재벌기업이라 할 수 있는 B그룹 K회장 등 1백위권 이내의 재벌그룹 회장들도 7∼8명의 참여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중산층이 회원』이라고 김씨의 귀띔이다.
이영덕총리를 비롯한 이한빈 전 부총리·유근모 전 과기처장관 등 사회지도층 인사도 상당수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회원 개개인의 「양심의 목소리에 따른 결단과 실천」을 추구하기 때문에 아무런 강제규정이 없고 가입과 탈퇴,유산을 남기지 않는 방법 등 모든 결정권은 회원 자신의 재량에 맡겨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매년초 유서를 쓰며 ▲유서내용에는 재산의 3분의 2 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이 운동을 친구나 이웃에게 권한다는 3대 강령이 있다.
회원이었던 유상근 전 명지대 총장은 2년전 숨지며 약속대로 가족이 사는 집만 빼고 나머지 모든 재산을 평생을 몸담았던 학교로 환원하는 등 지금까지 사망과 동시에 재산을 환원한 회원이 5명이다.<최상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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