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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파먹는 박테리아?/증상­치료­주의점/전문의 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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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살을 갉아먹는」 박테리아로 온통 난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질병을 인체주변에 흔한 용혈성 연쇄상 구균에 의해 드물게 생기는 괴사성 근막염으로 추정,이 병은 신종 질병이 아니고 이미 몇년전부터 의학계에 알려진 희귀질환이며 전염성이 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라고 충고하고 있다. 이 괴질의 정체와 소동의 전말에 대해 정리해 본다.<편집자주>
◎이미 있었던 병… 전염성도 없다/박테리아가 독뿜어 살이 썩는것/면역력 떨어지면 항생제 안들어/정상인 “안심”… 중환자는 피부감염 주의를
서울대 의대 최강원(감염내과)·김익상(미생물)교수의 도움말로 자세히 알아본다.
◇박테리아가 살을 갉아먹을 수 있나=결론부터 말해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란 있을 수 없다. 박테리아는 세균을 의미하며 수만분의 1㎝ 크기에 불과한 단세포 미생물이므로 살을 갉아먹을 수 있는 입도 없으며 갉아먹은 살을 소화시킬 능력도 없다. 다만 감염자의 살이 썩어들어가는 것을 잘못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혈관통해 전신 퍼져
◇살을 갉아먹는 것이 아닌데 왜 썩게되나=박테리아가 분비하는 독소때문이다.
이 독소는 인간의 근육을 이루는 단백질과 피하지방층을 녹일 수 있는 효소이며 박테리아가 다른 생물체로 침입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하다.
이때 살갗이 벌겋게 붓고 물집이 생기며 고열과 구토에 시달리는 초기증상이 나타난다. 일단 살이 썩게 되면 괴사성 근막염이란 질환으로 이행하며,이는 근육층까지 침입한 박테리아와 독소가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생명을 위협하게 되는 응급상황이다.
○돌연변이 확률은 적어
◇에이즈 바이러스와 같은 신종세균의 출현은 아닌가=이번에 문제시되고 있는 박테리아는 연쇄상구균의 일종으로 이미 이 박테리아의 형태·특성에 대해선 충분한 연구가 돼 있는 상태다.
이 박테리아는 이번에 문제시되고 있는 피부감염 외에도 심장·콩팥·폐·인두 등에서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을 훨씬 높은 빈도로 일으킬 수 있다.
박테리아 역시 어버이로부터 태어나는 생물체임을 감안할때 원래 없었던 것이 느닷없이 나타날순 없으므로 신종세균의 출현은 아니다.
물론 돌연변이에 의한 신종세균의 출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순 없지만 확률적으로 극히 드문 일이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슈퍼세균이란 설도 있는데=최근 항생제 남용으로 내성을 가진 슈퍼세균이 등장해 문제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나 연쇄상구균에 대해선 아직 항생제가 우세한 편으로 실제 임상에서도 모든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지닌 연쇄상구균은 극히 드물다.
살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 감염자에게 항생제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못한 이유는 항생제로 세균자체는 죽어도 독소는 그대로 남아 근육조직의 괴사가 진행되기 때문이며 감염자의 면역능력이 정상인보다 저하된 것도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면역결핍자 주의해야
◇감염경로와 주의사항은 무엇인가=연쇄상구균은 정상인의 피부·구강점막 등에서도 발견될 만큼 흔한 세균이며 결핵이나 감기처럼 호흡기나 음식물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진 않는다.
피부를 다치거나 입안이 헐때 외부상처를 통해 침입하게 되는 것이 주요 감염경로다. 그러나 평소 건강한 사람이라면 이를 격퇴할 충분한 면역력이 있으므로 지나친 걱정은 금물이다.
다만 면역결핍자는 주의를 요한다. 인체대장속에 수억마리가 존재하는 대장균도 일단 면역이 떨어지면 생명을 위협하는 균으로 돌변한다.
이번에 문제시된 감염자 역시 당뇨와 같은 질환이나 항암치료 등으로 면역력이 현저히 저하된 사람일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 소동을 빚은 영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정상인 감염자가 나왔다는 보고가 있는데=정상인이라도 상처소득을 게을리해 침임한 세균의 양이 많아지면 면역능력을 넘어 전신으로 파급될 수 있는 것이다.
국내 사망자의 경우도 다리에 쥐가 날때마다 소독이 불충분한 주사기로 습관적으로 상처를 내왔기 때문이다.<홍혜걸기자>
◎이번 소동의 배경/지나친 건강염려증­확대보도가 부른 “해프닝”
이른바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가 일으키는 공포의 괴질이란 전부터 국내에서도 산발적으로 있어온 연쇄상구균에 의한 중증 피부감염증에 불과하다 정상인이라면 하등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질환이며 외국에서 다소 발생률이 높아졌다고 해서 신종세균이니 괴질출현이란 표현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정작 소동의 발원지인 영국에서도 언론의 과잉확대 보도를 우려하고 있다.
영국 보건행정담당자인 케네스 캘먼 박사는 『이번 괴질소동은 섬뜩한 의학기사로 대중에게 어필하려는 언론소동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연쇄상구균이 일으키는 심장판막증이나 농가진·금성사구 체신염 등이 실제 임상에선 훨씬 더 심각한 질환임에도 이번 소동으로 뒷전에 처진 것이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잇따라 발견되고 있는 사례 역시 이전부터 임상에서 종종 경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언론의 추적보도에 의해 그 발병빈도가 확대해석된 느낌을 주고 있다.
지금도 아프리카·아시아 일대에선 매년 수만명씩 말라리아로 생명을 잃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번 소동 역시 선진국 편향적인 지나친 건강염려증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채인택기자>
◎「연쇄상 구균」이란/정상체내선 탈없어… 악성변종인듯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공모양으로된 지름 1㎛(1천분의 1㎜) 내외의 세균이 십수개씩 사슬모양으로 연결됐다 해서 연쇄상구균이라 부른다. 자연계서는 토양·물·우유 등에 존재하며 건강한 사람의 살갗이나 코·목구멍·장기·질 등에서도 살고 있어 상주균이라고도 부른다.
이 박테리아(세균)는 식중독이나 고름을 유발하는 포도상구균처럼 정상인의 인체에서는 아무 이상을 일으키지 않으나 체내면역이 떨어질 경우 상처가 나면 혈액속으로 다량의 균이 유입돼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 연쇄상구균이 일으킬 수 있는 질병은 ①인두염 ②심장판막증 ③사구체신염 ④중증피부감염 등이 있을 수 있다.
연쇄상구균에는 적혈구를 잡아먹는 용혈 등 병원성이 있는 것,병원성이 약한 것과 없는 것 등 분류방법에 따라 여러가지 있다. 그중 용혈작용이 있는 연쇄상구균을 용련균이라고도 하는데 혈액의 적혈구를 손상시켜 살갗을 썩게 할 수도 있으나 그동안은 항생제 투여로 대부분 치료가 가능했다. 또 전염성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의학계에서는 이 박테리아가 기존의 무해한 특성과 큰 차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강한 내성을 얻은 악성변종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신동재기자>
◎국내외 발생현황/국내사례 “유럽과 일치” 확증없어
국내 의학자들은 국내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 밝힌 사례들은 다만 항생제 치료가 잘 안되고 상태가 급히 악화된 괴사성 근막염 사례들로써 이것들이 유럽에서 문제가 된 것과 일치하는지는 아직 불명확한 상태다.
유사사례를 모아본다.
◇88년=가톨릭의대 이인주교수팀(정형외과)은 교통사고로 다리에 상처를 입은 환자가 강력한 항생제 투여에도 계속 썩어들어가 결국 다리를 절단,가까스로 생명을 구한 사례를 경험했다.
◇93년 5월=가톨릭의대 신완식교수(내과)팀은 당시 윤모씨(49)가 다리에 생긴 상처에서 비롯돼 피부의 검붉은 반점과 물집이 생기는 증세로 입원후 치료를 받다 계속 살이 썩어들어가 15일만에 사망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93년 10월=서울대의대 김의종교수(임상병리학)는 당시 20대 초반의 여성이 근막염으로 입원했으나 초기치료로 완쾌돼 퇴원했다고 밝혔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영국·스위스·노르웨이·독일·벨기에·네덜란드·뉴질랜드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살이 썩어들어가고 항생제가 듣지 않는 질환에 대해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톰프슨 프렌티스 세계보건기구 대변인은 한꺼번에 30명의 환자가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례도 있는 등 지난 5년동안 전세계적으로 1백66건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 질병에 대해 아직 자세한 실태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이나 다만 비위생적인 병원환경에 의해 균이 상처에 들어가 발병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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