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7가] 난쟁이들의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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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리가 있어야 지붕 위에도 올라가고 그래야 바다도 볼 수 있을텐데….' 처마 밑의 일곱 난쟁이들은 높은 집만 바라보며 한숨만 짓습니다.

9월도 중순이 지났건만 코리안 마이너리거들을 부르는 소리는 없습니다. 이대로 시즌이 끝날 모양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왔습니다.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아서 푼돈이나마 아끼겠다는 가난한 구단들의 잔머리 마이너리그 계약을 다시 사들여야 하는 번거로움과 수고….

하지만 이런 게 다는 아니었습니다. 9월1일이 되자 40인 로스터 확대에 따라 일제히 마이너리거들을 불러 올린 팀들 중엔 플레이오프 진출이 물 건너가고 가난하기까지 한 구단들도 수두룩 했습니다. 불과 한 달만 기용하기 위해 지명할당조치를 한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계약을 다시 사들인 구단도 적지 않았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쓴다'는 메이저리그의 시장 법칙이 달라진 것도 사라진 것도 아닌 것입니다. 앞서 이유들이 코리안 마이너리거들의 승격을 가로 막는 장벽이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본질은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를 수 있느냐 곧 기량의 문제였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에도 장세는 만만찮습니다. 올 겨울 자유계약선수 시장이 박찬호가 대박을 터뜨린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이렇다 할 투수 자원이 없고 부상 선수들이 많아 코리안 마이너리거들에게 호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과연 그럴지 의문입니다.

지난 겨울만 해도 그랬습니다. 샌디에이고서 제2 자유계약선수를 선언한 박찬호가 사상 최고로 물이 좋았다는 시장에 나왔으나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끝물까지 작자가 안 나타나 에이전트 교체라는 극약 처방을 쓴 끝에 간신히 뉴욕 메츠와 60만 달러 계약을 했습니다. '풍년 거지'가 따로 없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사상 최고의 흥행 수입을 올리게 될 구단들은 내년 시즌 후 쏟아져 나올 자기네 예비 자유계약선수들과 미리 다년 계약을 하는 작업에 총력을 기울일 게 확실합니다(이미 몇 개 구단은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이 해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는 선수들의 몸값을 지불하는 비용도 줄이면서 안전한 투자책인 때문입니다.

코리안 마이너리거들이 바다를 보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갈 수 있는 세 번째 사다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내년 2월 스프링캠프에 논-로스터 인바이티로 초청돼 메이저리그를 다시 노크하는 것인데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초청을 받기야 하겠지만 해마다 팀당 많아야 2~3명 정도가 그 선택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한 일입니다. 더욱 코리안 마이너리거들은 이미 5년 이상 테스트를 받은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바로 계속 도전해야 하는가 아니면 차선책을 도모해야 하는가라는 기로의 문제입니다.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냉정한 결단과 선택을 필요로 합니다. 특히 투수로서는 중년이라고 할 수 있는 서른 줄에 접어든 선수들은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볼 일입니다. '기회 비용'(일정한 생산 때문에 단념된 다른 생산 기회의 이익을 평가한 비용)을 따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선수도 있습니다. 지난해 캘리포니아 독립리그 팀의 한 일본인 선수는 "미국 야구가 좋고 미국 잔디 냄새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취업비자 없이 땡전 한 푼 못받으면서도 뛰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이 미국 잔디 냄새나 맡자고 태평양을 건너왔습니까? 얼마 안 있으면 귀향 준비를 해야 하는 추석입니다.

미주중앙 구자겸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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