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살해범의 얼굴(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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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대 로마 예술은 사실주의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두상·흉상 등 일련의 조각작품들이다. 얼굴의 특징들이 너무 세밀하게 묘사돼 마치 살아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악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하는데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정평나 있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기원전의 카리큘라,그리고 기원후의 네로와 칼리굴라의 두상들이다. 이들의 두상에서는 잔혹하고 악독한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들은 모두가 존속살해의 주인공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카리큘라는 아버지를 목졸라 죽였고,네로는 어머니와 아내를 암살했으며,칼리굴라는 아내와 하나뿐인 딸을 살해했다. 이들의 두상은 그 행적에 대한 선입감을 갖지 않더라도 악의 화신을 얼른 연상하게 한다. 후세의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이 그들의 악행을 정신질환에 의한 발작으로 보는 까닭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잠재된 악마성은 좀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온갖 흉악범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저지른 악행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동정심을 자아내게 할 만큼 악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악마성이 내면 깊숙이 잠재돼 있는 탓인데 그렇게 보면 차라리 겉으로 드러난 악마성에서 「정직함」을 찾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악마성에서 인간의 죄악이란 무한대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1백억원대의 재산을 노려 끔찍한 방법으로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런 심정에 빠진다. 그가 차라리 앞에 인용한 로마의 황제들처럼 잔혹하고 흉포한 모습이었다면 분노를 그의 얼굴에다 쏟아붓는 것으로 후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체격이 좋은 평범한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잠재된 악마성이 더욱 치를 떨게 한다.
『부모은중경』은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 수미산을 백번 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했거늘 은혜를 갚기는 커녕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이 세상이 과연 어떻게 돼가는 세상인지 도무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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