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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희의 SUCCESS 인상학] 돈 꿔줘도 될 사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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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경제가 어려워서인지 주변에서 돈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만약 누군가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금융기관이라면 신용불량자인지,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등 객관적 지표를 참고하겠지만,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라면 정에 이끌려 돈 잃고 사람까지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인상학에서는 사람의 인상으로 신용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본다. 상이란 실제 보이는 눈.코.입 등의 형상뿐 아니라 신용.실천력.대인관계.건강상태 등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상도 포함한다. 돈이란 사람이 갖고 있는 중요한 에너지 중의 하나다. '돈을 꿔줘도 될 상'이란 돈.시간.마음 등의 에너지를 빌려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를 포괄적으로 보는 것이다.

정보기술(IT) 거품이 한창일 때 한 회사 사장이 새로운 유망 벤처기업의 장외거래 주식을 수억원어치 사기로 했다. 결정하는 자리에 함께 있던 선배가 그 중 3천만원어치는 자기 몫으로 달라고 하면서 대신 돈은 나중에 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만 그 벤처회사가 망해 수 억원을 날리게 되었다. 그 사장은 사실 선배의 돈은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었다.

그런 경우 받지 못한 사례가 부지기수인지라 그 바닥에서는 양해가 되는 정도였다. 더구나 그 선배도 하던 사업을 문닫은 상황이었다. 해서 그는 어려우면 그 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선배의 생각은 달랐다. 자기가 한 말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선배는 일년에 1천만원씩 3년에 걸쳐 원금을 갚아주었다. 이 갚아준 선배라는 사람은 필자의 친구다.

그 친구는 목소리나 자세가 늘 안정되어 있고 느긋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니고 있으며 눈빛이 그윽하다. 이렇게 자신의 말의 실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반드시 앞으로 잘 나갈 사람이다.

돈거래를 할 사람을 볼 때는 우선 목소리를 본다. 목소리는 몸의 기운이 바깥으로 나올 때 정신과 몸의 에너지가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신 있는 사람은 배에 힘이 있다. 자연히 소리도 단전에서 울려 나오게 된다. 목소리가 크건 작건 상관없다. 자신감이 있고 건강하며 정신세계가 안정돼 있으면 목소리의 에너지도 살아 있다. 이런 사람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필자는 연세 많은 분들이 모여 있는 H로터리 클럽에서도 인상학 강의를 한다.이들은 70대 후반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울림이 좋고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나이가 젊다고 꼭 소리가 좋은 게 아니란 증거다.

반면 소리는 크지만 힘이 없고 떨림이 있다면 주의해야 한다. 소리가 힘 없이 풀려 있고 말을 어물어물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아니고 건강에 자신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 나의 중요한 에너지를 빌려줄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다음으로는 앉은 자세를 본다. 의자 뒤에 힘없이 기대거나 팔걸이에 몸을 의지하고 삐딱하게 앉아 있다면 앞으로의 상황도 좋지 않으리란 것을 암시한다. 힘있게 반듯이 앉아 있는 사람이라면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 몸이 건강한 상태면 반듯하게 앉게 된다. 자세는 사람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손으로 팔걸이 등을 짚거나 계단을 내려올 때 난간을 붙잡는다면 컨디션이 나쁘다는 뜻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강을 가진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받을 길은 멀다.

인상학자가 아니라도 사람을 보는 눈은 비슷하다. 수강생 중에 명동의 사채업자가 있었다. 사채업자를 찾는 사람들은 급전이 필요한지라 돈을 빌려줄지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무엇을 기준으로 돈을 빌려주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같다. 나이와 상관 없이 앉은 자세가 반듯한 사람, 급해도 느긋하게 미소 짓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상으로 본다. 미소마저 잃었다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얼굴색도 중요하다. 아무리 번드르르한 말로 돈을 갚겠다고 해봐야 눈빛이 초조하고 얼굴색이 좋지 않다면 돈을 갚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얼굴색이나 귀의 색이 어두워지지 않았다면 그는 갚을 자신이 있는 사람이다. 색이 환하다는 것은 단순히 희다는 게 아니다. 피부색이 어떻든 원래 색에서 별로 나빠지지 않은 상태의 색을 지니고 있으면서 윤기가 나는 걸 말한다. 얼굴은 우리 몸 오장육부의 거울이다. 혈맥이 가장 많이 연결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거나 무안하거나 긴장하면 오장육부가 상한다. 위가 상하면 대개 뺨이 붉어진다. 마음을 끓여 심장에 부담이 가면 이마부위에 붉은 기색이 나타난다. 가벼운 스트레스라면 붉은 기색이 나타났다가도 빨리 풀어진다. 그러나 고민이 많고 안정되지 않았다면 얼굴에 얼룩덜룩 검붉은 먹구름이 끼게 마련이다. 얼굴에 색이 뭉쳐 있고 어느 부분이 어둡다면 돈을 갚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얼굴색이 좋아져야 일도 잘 풀린다. 마른 논에 물을 부어봐야 얻을 게 없다. 조금만 투자하면 잘 자랄 논에 물을 대야 수확을 할 수 있다. 얼굴색을 보는 것도 같은 이치다. 얼굴이 편안해 앞으로 잘 풀릴 듯한 사람에게 빌려줘야지, 당장 급한 불은 끄더라도 며칠 안 돼 또 터질 사람에게 돈을 줘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마지막으로 법령을 본다. 법령이란 코 옆에서 입가로 둥글게 입을 감싸듯 내려오는 선으로 웃을 때 생기는 미소선이다. 법령이란 말 그대로 법과 약속을 지키는 선이다. 법령은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법령이 확실한 사람은 윤리관이 강한 사람이다. 다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적어도 빌린 건 갚아야 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은 머리에 박혀 있는 사람이다. 학교 선생님이나 공무원.판검사 등의 직업군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체로 법령이 뚜렷하다. 이런 사람은 재미는 없어도 진지하다. 돈이 없어서 갚지 못하면 적어도 양심의 가책은 받을 사람들이다. 반면 법령이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은 있지만 어린이가 책임감을 별로 의식하지 않듯이, 직장을 다니다가도 다른 기회를 찾을 궁리를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어려울 때 "에잇! 아무렇게나 해버리지"라며 저질러버리는 경향도 있다. 교통 경찰관이 없으면 중앙선을 넘어 차를 거꾸로 돌리는 성격으로 그만큼 법 관념이 희박하다. 이런 사람에게 돈을 꿔주면 화장실 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입장을 바꿔 돈을 빌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상대의 마음을 열거나 얻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잘 관리해야 한다. 꾼 돈은 반드시 갚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굳게 하고, 따뜻한 마음에는 신뢰로 보답하겠다는 자세와 더불어 자기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게 된다. 그래서 얼굴색도 밝아지고 목소리도 당당해지며 자세도 의젓해진다. 그러면 돈도 잘 빌릴 수 있고, 마음도 얻을 수 있는 상이 절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서 명심할 것은 자격지심으로 일을 그르치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돈을 꾸는 입장이라는 열등한 자격지심보다는 언젠가 더 크게 보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지닐 때 일도 잘 되고 마침내 두둑한 이자까지 붙여 서로 웃는 얼굴로 돈을 갚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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