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 부총리 비핵재검토 발언뜻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서 사실상 위반 우리만 고집 불필요”/“영변 화학실험실은 금지된 시설”/미 북핵 해결방식에 불만/정부 공식입장 대변한듯
이홍구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24일 국회에서 「비핵화선언 재검토」를 거론함에 따라 한반도의 비핵화 선언은 경우에 따라 전면 수정될 가능성과 함께 국내외적으로 미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 부총리는 『북한이 핵재처리시설로 밝혀진 방사화학실험실을 게속 유지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새로운 각도에서 논의치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비핵화 선언이 어느 의미에선 사실상 무효화됐으며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지는 미묘한 문제』라고 말하고 『비핵화 선언의 효력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핵 자주정과 연관해 많은 검토와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이 핵재처리시설을 유지한다」는 가정위에서 한 발언이지만 정부가 북한의 태도여하에 따라선 비핵화 선언을 재검토할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 부총리의 발언은 전반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를 원하고 북한이 재처리시설을 폐기하도록 촉구하는 성격이 강하지만 그동안 정부정책과는 다른 것이고,특히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는 중국이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개정도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할 수도 있다는 미국의 입장과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그의 발언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핵주권론에 근거한 비핵화 선언 무효론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씨를 비롯한 핵주권론자들은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직전에 있는데 우리만 비핵화 선언을 준수하는 것은 「미국에 놀아나고 북한에 끌려다니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평화전략연구소의 김태우박사는 『핵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한반도 비핵화만으로는 불충분하다』며 『비핵화 선언 3조의 재처리시설 조항 페지와 함께 우리의 핵정책이 동아시아 비핵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한미정부의 공식입장은 아직까지는 한반도 비핵화선언 고수다.
한승주 외무장관을 비롯한 정부내 비핵화선언 고수를 주장하는 쪽은 남·북한 핵무장은 곧바로 일본 핵무장→동북아 불안정→NPT체제 붕괴로 이어지는 「핵도미노현상」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부총리의 발언은 국회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개인 소견이라기보다는 정부의 공식입장을 밝힌 것과 같다.
그는 최근 신문편집인 조찬간담회에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반개만 갖고 있어도 비핵화 선언은 무효』라는 발언을 했다.
그는 『이같은 비핵화 철회 가능성에 대한 발언이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메시지』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의 이번 발언은 정부의 통일·외교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총리로서 미국의 핵문제 해결방향에 뭔가 불편한 심기가 있고 이에 제동을 걸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단계 회담을 위한 막바지 대화에 들어가 있는 시점에서 그의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의 발언 배경은 무엇보다 「북한은 이미 비핵화 선언을 사실상 깬 상태인데 우리만 미련하게 이 선언을 지킬 필요가 있느냐」는 인식을 깔고 있다.
이 부총리의 발언에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미지수다.
한반도의 비핵화를 줄곧 지지해온 중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바람직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개발도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 부총리의 발언은 만약 북한이 핵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미국도 이를 용인하는 방향에서 핵문제를 처리할 때 한국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때 가서 해야 할 정부의 고민을 미리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최원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