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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좌측보행’서 왜 ‘우측보행’으로 바꾸려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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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좌측보행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우측보행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도 우측보행의 타당성 검토에 나섰다. 올 7월 11일 우측보행 캠페인이 열린 서울 송파구 잠전초등학교 앞에서 시민들이 우측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중앙포토]

‘장애물이 앞에 있을 때 사람들은 오른쪽과 왼쪽, 어느 방향으로 피할까’.
서울 송파구청이 올 7월부터 국제안전도시로 인정받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우측보행을 권장하면서 좌측보행의 안전 문제가 불거졌다. 정부도 우측보행의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일반인의 보행 방향 선호도를 조사해 타당성이 인정되면 보행 방식을 개선할 방침이다. 좌우측보행을 둘러싼 논란의 배경과 향후 과제 등을 짚어 본다.

◆우리는 왼쪽으로만 걸었을까=190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적 규정인 대한제국 규정 ‘가로관리규칙’ 6조는 우측보행을 명기했다. 하지만 일제는 1921년 조선총독부령 제142호 ‘도로취체규칙’을 통해 사람과 차량 모두 왼쪽으로 다니도록 했다.

일본인들은 왜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삼았을까. 사무라이의 보행 관습과 연계해 설명하는 설이 지배적이다. 사무라이는 보통 왼쪽 옆구리에 칼을 차고 다녔다. 그래서 오른쪽으로 걸을 경우 마주 오는 사무라이의 칼과 자신의 칼이 부닥치기 쉽다. 이때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기 위해 좌측으로 보행하게 됐다. 이런 보행 관습을 우리나라에도 강요했다는 것이다.

광복 후 미군정은 차량에 한해 우측통행하도록 했다. 61년 제정된 현행 도로교통법은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않은 도로에서는 도로의 좌측으로 통행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이 학교 교육과 공공기관의 홍보를 통해 일상생활에 확대 적용돼 관습으로 굳어졌다.

◆우측보행을 주장하는 이유=80년 넘게 이어져 온 좌측보행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우측보행국민운동본부 황덕수 본부장은 “국민 대다수가 오른손잡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좌측보행은 인간의 행동 특성과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오른손잡이는 왼쪽 다리를 중심축으로 삼고 오른쪽 다리에 활동성을 부여하기 때문에 우측보행이 편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좌우로 이동할 때는 오른쪽 방향으로, 원형이나 곡선으로 운동할 때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황 본부장은 “좌측보행은 오른손잡이에게 왼손만 쓰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며 “오른손잡이는 오른쪽 방향으로 걷는 게 자연스럽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오른쪽을 선호하는 경향을 자주 볼 수 있다. 운동장 트랙을 도는 대다수 경기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게 돼 있다. 등산할 때도 마주 오는 상대에게 길을 양보할 경우 보통 오른쪽으로 움직인다. 노약자가 산이나 계단을 오를 때도 오른쪽 난간을 짚을 때가 많다.

박물관·미술관·전시장에서도 관람객은 우측 방향으로 나아가며 작품을 감상한다. 공항·백화점·호텔·대형 빌딩의 회전문이나 지하철의 개찰구 등은 우측 방향으로 설치돼 있다.

물건을 살 때도 마찬가지다. 유통 전문가에 따르면 대형 마트에서도 이동 통로의 오른쪽에 진열된 상품이 잘 팔린다. 구매자의 시선이 우측으로 먼저 가는 데다 제품도 오른손으로 짚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가스레인지의 점화 스위치, 냉장고의 문, 싱크대의 수도 모두 오른쪽에서 이용하기 편하다.

반면 좌측보행은 갖가지 불편을 초래할 뿐 아니라 보행자의 안전까지 위협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행자가 차량을 등지고 걸으면(좌측보행) 뒤에서 돌진하는 차량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교통안전관리공단이 발표한 2005년 보행자 사고 통계에 따르면 보행자가 차량을 마주보고(우측보행) 걸을 때(1455건)보다 차량을 등지고 걸을 때(2362건)가 1.6배 높다.

우측보행론자들은 미국·영국·중국 등은 물론 우리나라에 좌측보행을 강요한 일본까지 우측보행을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갔을 때,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보행 방법이 달라 사고가 나기 쉽다는 것이다.

◆보행 변경 때 예상되는 문제=우측보행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측보행으로 바꿀 경우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비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80년 동안 굳어진 사람들의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치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차도뿐 아니라 위험물을 다루는 생산 현장에서 자칫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좌측보행을 권장해 온 교과서나 각종 문서 등의 내용도 바꿔야 한다.

고려대 의대 생리학과 나흥식 교수는 “사람이 보행할 때 뇌와 함께 척수가 관여하는데 뇌와 달리 척수에는 좌우가 없으므로 우측보행이 오른손잡이에게 편하다는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한국어린이안전재단 고석 대표는 “좌측보행으로 보행자가 느끼는 불편과 스트레스 등을 감안하면 사회적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는 추산하기 힘들 정도로 막대하다”며 “우측보행으로 전환할 때 드는 사회적 비용은 상대적으로 적을 뿐 아니라 일시적일 것”이라고 말한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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