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철씨 월간중앙과 언론 최초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金賢哲씨는 19일 출간된 月刊中央(6월호)을 통한 언론과의 최초 인터뷰에서 한겨레 신문과의 송사등 현안을 비롯,정부내 인사.정책개입 여부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입장을 5시간에 걸쳐밝혔다. 다음은 月刊中央에 게재된 인터뷰중 관심가는 대목을 추린 것이다.
-한겨레 신문과의 20억원 송사는 너무 감정적인 대응이 아닌가. 『타당하지 않은 말이다.한겨레 6만명 대주주중에는 나의 아버님도 포함돼 있다.나도 창간때 국민주를 사려했지만 아버님이사셔서 그만뒀다.누구못지 않게 한겨레 신문의 탄생을 축하해주는입장이었다.단지 한겨레 신문의 이번 보도 태도에 크 게 실망하고 있을 뿐이다.』 -20억원의 손해배상액수의 근거는 무엇인가.한 개인의 명예훼손 배상액치고는 좀 과하다는 지적이 있고 한겨레 신문의 존립과도 관계되는 액수다.결국 자신이 대통령 아들이라는 특수신분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며 여타 언론에 대한 공포탄. 언론탄압이라는 시각도 있다.
『액수의 과다를 떠나서 언론도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번 송사는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을 거쳤다는 지적도있다. 『청와대라는 국가기구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개인을 구별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발상이니까 그렇다.그렇게 청와대와 연계시키려는 것은 권력이 언론을 탄압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노력에불과하다고 생각한다.당해 언론이 나를 특수신분으로 만들 었다고생각한다.이번 사건만 해도 처음부터 사실에 근거해서 진행되었더라면 나도 이런 식으로 전개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나는 반론의 기회도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겨레 신문쪽에서는 오히려 반론권을 주기 위해 찾아도 연락조차 취해지지 않는다고 하던데….
『전혀 사실과 다른 얘기다.』 -일부에선 이번 사건이 권력을이용한 언론통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
『언론통제라는 말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이번 사태를 권력과 국민의 알권리가 충돌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번 일은 국민의 알권리와 국가권력의 충돌이 아니라 단지 내 개인의 명예와 인권에 관한 문제다.』 -그래도 한겨레는「정론직필」이고 김현철씨는「언론탄압」이란 등식으로 설명하는 견해도 있다.
『한겨레 얘기는 그만 하자.정론직필이란 객관성을 유지하고 진실에 바탕을 둔 보도일때 가능한 말이라고 생각한다.언론탄압이란말도 그렇다.권력이 언론에 대해 저지르는 횡포와 압력을 지칭하는 것일게다.이번 사건은 어디까지나 한 국민으로서 언론의 잘못된 보도에 대한 당연한 반론권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은 주로 언제 만나는가.
『(대통령은)주말은 반드시 가족과 함께 보내신다.일요일 아침에 가정예배도 같이 보고 점심도 같이 한다.대통령의 아들이라고해서 시도 때도 없이 만날 수는 없다.』 -일요일에 대통령을 만나면 정치얘기도 하게 되고 이런저런 정책건의도 하는것 아닌가. 『남들은 정치얘기를 많이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다르다.물론 시중여론 같은 것은 말씀드린다.교수님 말씀이나 대학원생.친구들의 얘기를 전해 드리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金賢哲씨의 역할중 하나로 대통령에게 직언이 가능하다는 것을 드는 사람도 있다.맞는 말인가.
『직언이란 공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 상사에게 드리는 말이다.나는 역시 단순히 시중여론을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님께 알려드리는 것에 불과하다.』 -李會昌前총리 해임후의 시중여론도 좀 전해 드렸는가.
『그 점에 대해선 대답하지 않겠다.』 -金賢哲씨가 주변의 검증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인사개입을 하고 정부의 상당한 고위직 인사도 천거한다는 얘기들도 있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정말 아버님의 성격을 몰라서 하는 추측들이다.나도 그런 청탁을 안하지만 아버님도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田炳旼씨는 金賢哲씨가 천거하지 않았나.
『사실과 다르다.李永鎬前체육부장관의 추천으로 대통령께서 저보다 그를 먼저 알고 계셨다.』 -李忠範씨와는 어떤 인연인가.
『중학교(中大부중)3년 선배지만 학교 다닐때는 몰랐다.3당합당 직후 14대 총선전부터 만나기 시작했다.변호사로 나름대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었고 우리도 여러 조직이 아쉬웠던 때였다.』-실제로 정부의 정책결정에 어느 정도 간여하고 있나.
『그런 말이야말로 한평생을 정치에 몸담아 오신 대통령과 주변참모,요직에 계신 분들에 대한 과소평가이자 누가 되는 얘기다.
나는 분명히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언론도 자주 언급하는것이지만 국정이 정부와 당의 공조직을 통해 이 뤄져야 한다는 점에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아직도 더러 金賢哲씨의 사조직 얘기가 나온다.
『과거의 여론조사팀을 나의 사조직이라고 얘기하는 모양인데 이팀은 대선후에 완전히 해체됐다.』 -金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개혁의 평가라 할까,私見을 물어도 괜찮겠는가.
『외람된 일이다.아마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아버님이 하시는 일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다른 사람보다 크다는 정도일것이다.국민 대다수가 이 정부의 국정운영과 개혁기조에 대해서는적극 찬동하지만 다소 미흡하고 아쉬운 대목이 있 다고 보는 것아닌가.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찬성파는 아니다.』 -어쨌든 이번 한겨레신문과의 사태를 계기로 「언론탄압」이란 말이빈번해지고 있다.
『언론공화국이란 말이 나오는 시대에 언론탄압이라는 단어가 존재할수 있는가.』 ***田炳旼씨 천거 안해 -최근 언론노보가 정치부 기자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4.7%가 金賢哲씨를 與圈의 제2인자라고 보았고 91.8%가 賢哲씨의 영향을10위권 이내로 보았다.사실이 그런가.
『의도를 가진 보도에 대해서는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와 선거전(87년 大選)에 뛰어든 동기는. 『내가 미국에 간 것은 84년이다.아버지의 23일간 단식이 83년에 있었고 이후 가택연금이 풀린 시점이었다.3년동안 미국생활을 하며 MBA(경영학석사)를 마치고 87년에 귀국했다.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귀국하 자마자최루탄을 마셔야 했고 6.10항쟁이 6.29로 이어지고 곧바로대선전에 돌입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됐다.』 -꼭 金賢哲씨가 그렇게 뛰어야 했나.선거에 도움은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때도 대선이 없었더라면 그냥 밖으로 나가 공부를 했을 것이다.그러나 아버님이 고군분투하시는데 자식으로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장인은 루머 피해자 -해외유학 문제는.
『우선 대학원(高麗大)박사과정을 마쳐야 한다.어찌보면 아버님의 임기동안이 공부를 마치기에 가장 좋은 기간이란 생각도 든다.어차피 나도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이 필요하다.쓸데없는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도 공부를 마쳐야한다.박사과정이 빠 르면 3년이고 5년이 보통 아닌가.나는 MBA를 마쳤으니까 선수과목을 빼고 36학점만 마치면 된다.그래서 전체 기간이 좀 당겨질 수는 있다.』 -정치참여,박사학위 취득후 교단에 서는것,경영학 공부를 했으니까 사업같은 진로도 모색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중가장 선호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솔직히 아직 결심하지 못했다.모두가 박사학위를 따놓고 생각할 일이다.지금은 학생 金賢哲로만 인식해 달라.현재는 명함을 만든다면 「학생 김현철」이라 만들고 싶다.』 -장인인 金雄世씨와 관련된 롯데부지 매각등의 루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인은 루머의 피해자다.그런 사안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생각한다.아버님의 재임기간중에 루머는 계속 양산되리라고 보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께 부담을 줄 분이 아니다.』 -민주계 實勢,요컨대「家臣」들과 알력이니 불화니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그 분들은 내가 아주 어렸을때부터 뵙던 분들이고 아버님이 정치적으로 어려웠던 고비마다 곁에서 큰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이다.그래서 나로서는 항상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다.외람되게 내 입장이 뭐라고 그런 대선배들과 갈등이니 뭐니가 있겠 는가.그동안 내가 그분들과 만날 이유도 없고 해서 만나지 않았는데 무슨굉장한 갈등이 있는 것처럼 몰아붙이고 있다.』 〈高道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