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유럽서 美최고감독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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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2일 성대히 막을 올린 제47회 칸영화제에서 미국의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심사위원장을 맡는다는 외신보도에 많은 팬들은 의아함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영화팬들에겐 자존심 강한 프랑스인들이 이런 중요한 자리를 미국의 일개 액션스타에게 맡긴다는 것이 의외로 비칠법하다.
최근 몇년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이를테면 빔 벤더스,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루이 말등 유럽을 대표하는 쟁쟁한감독들과 비할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확실히 급이 낮아 보인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통념과는 달리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현재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미국감독중 한 사람이다.
특히 프랑스에서의 평가는 거의 열광에 가까울 정도여서 그의 작품인 『용서받지 못한 자』와 『퍼펙트 월드』가 92,93년 잇따라 프랑스 비평가들이 뽑은 그해의 최우수영화로 선정된 것을보아도 잘 알수 있다.이러한 프랑스에서의 높은 인기가 그를 미국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칸심사위원장으로 만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이스트우드의 감독데뷔작은 71년에 만든 스릴러물 『어둠속에 벨이 울릴 때』(CIC 출시)였다.배우와 감독을 함께 해오면서경력을 쌓아온 그가 감독으로서 가 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작품은75년에 만든 서부극 『아웃트로』였다.서부극.코미디.경찰물등 다양한 장르에 걸쳐 영화를 만들면서 부단히 스타로서의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켜온 그가 단순히 스타감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작가」로서 손색이 없음을 보여준 작품은 85년에 나온 『페일라이더』(SKC 출시)였다.
무법자로서의 어두운 과거를 갖고있는 어느 목사가 금광개발을 위해 마을사람들을 쫓아내려는 악당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이 영화는 거의 종교적이라 할 묵시록적 분위기가 감도는 이색적인 서부극으로 폭력의 불가피성에 대한 그의 깊은 통찰이 드러나는 수작일뿐 아니라 그후의 걸작 『용서받지 못한 자』를 예견케하는 영화다. 88년과 90년에 각각 발표한 『버드』(SKC 출시)와『추악한 사냥꾼』(SKC 출시)은 재즈 뮤지션과 영화감독을 통해 일류 예술가들의 자기파괴적인 측면을 분석한 역작이다.특히 왕년의 거장 존 휴스턴을 모델로 한 『추악한 사냥꾼』 은 할리우드에 대한 애정과 증오가 뒤섞인 이스트우드의 착잡한 심경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스트우드는 자신의 영화적 스승으로 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세르지오 레오네와 돈 시겔을 꼽고 있다.그는 세르지오 레오네에게서 미국사회를 보는 비판적 안목을 배웠고 돈 시겔에게선 오락영화를 빈틈없이 만들어내는 기능적 탁월성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64세인 그의 영화가 젊은 감독들에게선 보기 어려운깊은 명상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30년이 넘도록 영화를 만들어온 그의 프로로서의 관록탓일 것이다.할리우드의 전통적인 틀을 고수하면서도 그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내 는 것은 프로가 아니면 불가능한 작업인 것이다.그러므로 그가 아마도 「할리우드 최후의 거장」이 되지않겠느냐는 전망은 결코 과장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林載喆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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