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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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30) 어젯밤 잠을 설쳐서 뒤숭숭한 머리로 명국은 다음날 아침 갱으로 들어가기 위해 숙사 앞에 서 있었다.어제 아침 종길이의 일로 웅성거리다가일을 늦게 나갔던 것과는 달리 오늘은 인부들도 조용한 편이었다. 『오늘은 아주 조용들 하구먼.밤새 무슨 떡고물이라도 얻어들먹었나.』 어제 아침 시끄럽게 나서던 장씨 옆으로 다가서며 그가 들으라는 듯 송가가 말했다.
『조용하지 않으면? 자네 몰랐었나? 어젯밤에 몇 사람 불러가더니 조용하지 않으면 요절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은 모양이던데.
』 인부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갱으로 들어가는 입구 뒤편의 방파제 위로 오늘따라 각반까지 찬 노무계 직원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것이 멀리 바라보였다.
인원점검을 끝내고 인부들은 줄을 맞춰 갱을 향해 걸어들어갔다. 『허기사,뭐.큰소리 쳐 봐야 이불속에서 활개짓하기지.조선사람 말짱 헛것이여.다 구부러진 송곳이요 불없는 화로지,뭐 별거겠어.』 『꼭 그렇게 생각할 거만은 아니지.』 『안이면 뒤집어서 거죽 하려무나.』 『이 양반아.아 어디 고추가 꼭 커야만 맵던가.우리가 그렇게라도 시끌시끌 하고 나니까 벌서 대하는게 다르지 않은가 말이여』 다르긴 뭐 개뿔이 다르다더냐.명국은 외면을 하면서 숙사 유리창에 닿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았다.잠을 못 자 검고 더부룩해 보이는 얼굴에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어젯밤 저쪽 방에서 몇 사람 노무계에 불려갔더랬다는 이야기는그도 듣고 있었다.징용공의 도둑질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은 급식을 비롯한 후생복지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고,그 방면에각별히 노력하겠다고,뭐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도 했다.미친놈들,배고프다고 저마다 도둑질 할까.소가 헤엄쳐 건너간 거 같은 고깃국 한번 먹이고 나서,이만하면 됐지 않으냐 할 거야 또 뻔한일이지. 명국은 고개를 숙이며 옷소매를 내려다보았다.빨래할 마음도 없어서 게으름을 피웠기 때문일까.입고 있는 옷소매가 때에절어 있었다.
때 묻은 소매 보면 고향 그립고…길어진 손톱을 보면 집 떠난지 오래인 걸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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