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수도 개성」안(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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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려 태조 왕건의 5대조인 강충이 오관산 마하갑에 살고 있을 때 풍수에 능한 신라의 감우팔원이란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감우팔원은 강충에게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산형은 뛰어나지만 수목이 없는 민둥산이니 군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소나무를 심어 옥석을 드러나지 않게 하면 후에 삼한을 통합하는 사람이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에 따라 강충은 군민과 함께 거쳐를 남쪽으로 옮겨 군의 이름을 송악으로 고친 다음 소나무 심는 일에 몰두했다. 과연 강충으로부터 5대째에 이르러 왕건은 고려를 세우고 국도를 송악,곧 지금의 개성으로 정했다.
이것이 고려 건국에 얽힌 설화 가운데 하나인데 신라말기의 최치원도 비슷한 상소를 했다가 왕의 미움을 받고 집을 떠나 해인사에 숨었다는 기록이 있고 보면 국도로서 개성의 입지는 이미 그 이전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후세의 풍수학자들은 강충때 군을 산의 남쪽으로 옮기고 산 전체에 소나무를 심었던 것은 그 모두가 풍수의 본질에 적중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펴왔다. 즉 지금 송악의 남쪽 기슭 일대 땅은 산수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도회의 분지를 둘러싼 산세가 그 어느 곳보다 뛰어나 나라의 중심도시로서 손색없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주봉에서 동남·서남으로 좌우의 날개처럼 내려뻗은 산줄기가 동쪽은 강하고 서쪽은 약해 그 결과 나라에는 명상이 드물고 무신들이 자주 싸움을 일으킨다는 견해를 편 풍수학자들도 있거니와 국도로서의 입지조건이 긍정적이든,부정적이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통적인 관념이요,사고방식의 산물일 따름이다. 현대적 의미로서는 동떨어진 얘기일 수도 있다.
21세기위원회는 「21세기의 한국」 보고서를 통해 통일한국의 수도로는 개성부근이 가장 적합하다는 안을 제시했다고 한다.역사성·상징성·통합성·발전성 따위를 감안할 때 그곳이 최적지라는 것인데,왜 서울이 아니고 하필이면 개성이냐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공간적 의미와 개방시대에 방어쪽에만 치우친 전통 풍수론적 접근이 부적합하다는 견해의 중요한 이유다. 그나저나 북핵문제나 남북대화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한국의 수도」 얘기가 나오니까 어쩐지 남의 얘기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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