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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詩)가 있는 아침 ] - '돌멩이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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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봉(1953~ ) '돌멩이 하나' 전문

아침 산책길 돌멩이 하나 문득 발길에 차인다 또르르 산비탈 아래 굴러 떨어진다

저런저런……내 발길이 그만 세상을 바꾸다니!

달팽이 한 마리 제 집 등에 지고 엉금엉금 기어가는 풀섶 근처…이슬 방울마다

황홀한 비명. 하얗게 열리고 있다.



저물 무렵 순천만에 나가다.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부드러운 햇살 속으로 펼쳐지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카드 섹션을 바라보는 것 같다. 흰빛과 회색으로 반짝이는 저 작은 색종이들. 그들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시베리아로부터 날아왔다고 한다. 학명(Baikal teal)은 이들의 본적지를 일러준다. 바이칼 호수. 저 작은 새의 날갯짓과 울음소리는 광대한 시베리아의 초원과 호수에 펼쳐지던 것들이다. 어찌 그들의 몸짓을 단순히 철새들의 춤으로만 부를 수 있을까. 작은 생명들이 어울려 노래하는 지난한 생의 찬미…. 아침 산책길에 문득 돌멩이 하나 발길에 차일 때 화들짝 놀랄 수 있음은 시인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그 작은 돌멩이 하나, 우주의 시원에서부터 비롯되었을지니….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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