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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에 넘겨진 ‘간통죄 위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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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13면

헌법재판소가 논란을 거듭해온 간통죄에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6월 재외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한 현행 선거법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선고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40대 기혼 남성인 J씨. 그는 부인과 별거 중 30대 미혼 여성 K씨와 사랑에 빠졌다. 동거 생활에 들어간 J씨는 부인과의 3자 대면 등 우여곡절 끝에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그러나 K씨를 잊지 못하고 다시 불륜에 빠졌다. 간통죄로 고소당한 두 사람은 지난 6월 불구속 기소됐고, 재판 과정에서 불륜 사실을 시인했다. 부인이 고소를 취소하지 않는 한 유죄를 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불륜 남녀’ 둘러싼 뜨거운 논쟁 시작됐다

그러던 어느 날 재판 진행이 갑자기 멈췄다. 재판장이 이들에게 적용된 형법 241조, 즉 간통죄 처벌조항에 대해 위헌 제청을 한 것이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할 경우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다.

재판장인 서울북부지법 도진기 판사를 만났다. 경력 10년차의 도 판사는 이 사건을 맡고 고민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형사 단독 판사로 간통 사건을 맡게 되면서 의문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처벌에 동의하지 못하면서, 형법에 나온 대로 처리하면 그만인가’ 하는… 양심의 가책 비슷한 것이었지요.”

그가 동의하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개인 간의 애정 문제에 왜 국가 권력이나 형법이 개입하느냐’는 점이었다.

“성행위 여부와 상대방을 선택할 권리도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에 해당합니다. 물론 간통은 배우자에 대한 배신행위이고, 분명히 결혼 계약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혼법정이나 민사법정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이지, 형사법정에 세울 문제는 아닙니다.”

도 판사는 위헌 제청을 결정하기 앞서 다른 판사들이 간통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조사해봤다. 그 결과 ‘형법 241조는 이미 수명을 다한 법’이란 결론을 얻게 됐다고 한다. 많은 경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되고, 판결까지 가더라도 대부분이 불구속 재판에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고 있었다.

“여성의 보호 필요성은 인정합니다만, 형벌보다는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같은 수단을 강화해 보호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가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현행법상 이혼 소송을 내야 간통죄 고소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 안 됩니다.”

북부지검 이동규(34) 검사는 J씨 사건을 재판에 넘긴 수사검사다. 검사 4년째인 이 검사에게도 간통 사건은 탐탁지 않은 것이었다. 한방에서 함께 벌거벗고 있더라도 분명한 증거가 없는 한 유죄를 받아내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 고소인 쪽에서 납득하지 못한다.

“간통죄 실무에 있어 문제가 있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판사들이 매우 엄격하게 증거를 요구하는 상항에서,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면 무죄를 받는 경우가 많지요. 악성 피고인에게 오히려 유리한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막상 기소를 하더라도 고소 취소로 공소 기각되고….”

그러나 이 검사는 검찰을 대표해 도 판사의 위헌 제청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헌재에 보냈다. 실무상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간통죄를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 결정권이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권리의 본질적 내용까지 침해하느냐, 이것이지요. 선량한 성 도덕과 일부일처(一夫一妻)주의, 부부간의 성적 성실 의무 같은 다른 가치들과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따져봐야 해요. 아무리 이불 속이라도 해도 공공질서에 영향을 미친다면 최소한의 제한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간통죄 폐지 여부를 결정할 곳도 헌재가 아니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라고 제시한다.

“인터넷 포털의 여론조사를 보니 폐지 찬성 51%, 반대 49%로 나오더군요. 이렇게 찬반이 크게 갈리는 쟁점은 국회에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사나 재판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현재 법에 정해진 ‘2년 이하의 징역’에다 벌금형을 추가하는 것 같은 대체입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 검사는 도 판사가 결정문에서 “간통죄 폐지는 세계적 추세”라고 지적한 데 대해 “일본이나 우간다 등은 여성의 간통만 처벌하는 불평등 체제였다”고 반박한다.

J씨 사건은 도 판사와 이 검사의 손을 떠나 헌재로 넘어갔다. 헌재는 2001년 10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간통죄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당시 재판관은 현재의 4기 재판부에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재판관 9명 가운데 이강국 소장과 김종대·김희옥·민형기·목영준 재판관 등 5명이 인사청문회에서 간통죄 폐지 필요성에 공감해 위헌 정족수(6명)를 넘길지 주목된다.

하지만 간통죄처럼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나뉘는 사안에 대해 헌재가 직접 가부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이다. 2001년 결정 때처럼 다시 한번 국회로 공을 넘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일 대구지법 경주지원 이상호 판사도 간통죄 위헌제청 결정을 내려 헌재의 판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배우자의 동의가 있는 간통인 소위 ‘스와핑’이나 ‘수간’ ‘근친상간’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간통죄만을 처벌한다는 것은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헌재가 입법자에게 간통죄 폐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요구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이 간통죄로 처벌받고 있다.”(이 판사 결정문 중)

주심을 맡은 이공현 재판관을 재판관 실로 찾아갔다. 34년 관록의 법관 출신인 이 재판관은 “현재 심리 중인 사건”이라며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사회적 토론 절차를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직 사건 처리에 대한 재판관 평의를 열지 않은 상태입니다만, 각계의 입장을 직접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공개 변론에 부쳐볼 생각입니다.”

공개 변론이 열리면 형법학자는 물론 여성계와 유림 등 관련 단체들이 참고인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J씨와 K씨, 나아가 전국의 ‘불륜 남녀’들이 형법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이제 재판관 9명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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