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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내조’ 孫후보 부인 이윤영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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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6면

손학규 후보의 부인 이윤영(61·사진)씨는 ‘우렁각시형’이다. 꼭 나서야 할 때가 아니면 좀체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도 손 후보에게 도움이 필요할 땐 우렁각시처럼 어느 틈에 찾아와 일을 해놓는다. 손 후보가 지난해 ‘100일 민심대장정’을 다닐 때 이씨는 전국을 뒤따라가며 땀에 젖은 내의와 작업복을 뽀송뽀송한 옷으로 바꿔놓았다.

“날 만나려다 남편 수갑 찼을 때 못 잊어”

젊었을 때는 더했다. 이화여대 약대를 나온 이씨는 서울 수유리와 목동에서 약국을 하며 수사기관에 쫓기던 남편을 대신해 집을 지탱했다. 약국 앞에 진을 치고 잠복한 형사들 덕에 도둑은 얼씬도 안 했지만 이따금씩 이씨가 고초를 겪었다. 한번은 한밤중에 딸을 안고 검은 지프로 끌려갔다. 취조를 당하는 사이 설사를 앓던 아기를 여직원들이 씻어줬다. “이를 보던 한 젊은 수사관이 ‘이념이 뭔지…’ 하며 밖으로 나가더니 파우더 같은 아기 용품을 잔뜩 사오더라”고 이씨는 회상했다. 그런 일들을 겪으며 이씨는 수사기관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손 후보를 따라 영국으로 가면서 이씨의 가족 부양은 끝났다.

2004년 대형 폭발사고가 났던 북한 용천이 고향인 이씨는 1·4후퇴 때 월남한 실향민이다. 대학 3학년 때 일이 있어 동숭동에 있던 서울대 문리대를 들렀다가 한 살 연하인 손 후보를 만났다. 노란 은행잎이 교정에 가득한 가을날 검게 물들인 군용 점퍼를 입은 남자가 웃으며 다가와 “차 한잔 하자”고 말을 건넸다. 환한 웃음이 싫지 않아 학림다방엘 따라갔다. 오래지 않아 입대한 그를 제대할 때까지 ‘고무신 똑바로 신고’ 기다렸는데 그 뒤엔 더 힘든 시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씨는 늘 돕고 챙기며 살았으면서도 손 후보에 대한 커다란 미안함을 평생 지우지 못한다. 이씨의 설명은 이렇다.

“남편이 청계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때인데 하루는 형사가 약혼녀인 나를 따라붙었어요. ‘손학규 있는 곳으로 가라’고 다그쳐 엉뚱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떻게든 안 가려고 여기저기 다녔는데 엄청나게 야단을 맞았어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은신처인 판잣집 앞에 서고 말았지요.”

약혼녀의 기척에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나온 손 후보는 이씨가 보는 앞에서 수갑이 채워졌다. “그때 남편이 약혼반지를 빼서 제게 주더군요. 우리 사이가 끝났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너졌죠.”

손 후보는 “반지는 고문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기억했다.

“둘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이씨는 경선 열기가 달아오르는 요즘도 한 발짝 뒤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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