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몽구·김승연 회장 선고 계기로 본 ‘사회봉사 명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7호 05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1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해 집행유예와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 받은 뒤휠체어를 탄 채 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 회장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뒤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었다.[연합뉴스]

“사회봉사 명령은 ‘무보수 강제 노동’이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재산을 내놓거나 강연이나 기고로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법무부 보호관찰과 손외철 과장은 정몽구 회장에게 선고된 사회봉사 명령에 대해 “전무후무한 결정”이라며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판결이 확정된 김승연 회장의 경우는 “보통 내려지는 사회봉사 명령이어서 평소대로 집행하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회봉사 명령은 무엇일까.

집행유예자 42% 복지시설서 청소·빨래 #출석 체크는 화상전화로

사회봉사 명령은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범죄자에게 봉사를 통해 속죄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고, 집행유예로 풀어주기에는 마땅치 않은 경우 택하는 ‘제3의 길’이다.

1989년 소년법에 처음으로 도입된 뒤 97년부터 성인 범죄자에게도 적용했다.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사람에게 사회봉사를 명령하는 비율은 2000년 25.8%에서 지난해 42.2%로 늘었다. 지난해 2만7259명이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형법에는 “형의 집행을 유예하는 경우에는 사회봉사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은 규정돼 있지 않다. 대법원 예규 7조는 사회봉사 명령의 예로 ▶제초작업 등 자연보호 활동 ▶양로원 등 복지시설 및 단체 활동 ▶오물수거 등 공공시설 봉사활동 ▶모내기 등 대민 봉사 활동을 제시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6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와 함께 사회봉사 명령을 선고 받고 법원을 떠나고 있는 모습(왼쪽 작은 사진). [연합뉴스]

지금까지 법원이 내린 사회봉사 명령을 보면 김 회장처럼 복지시설 및 대민봉사 등으로 분야를 제시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정 회장처럼 구체적인 방법까지 지정한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은 ‘사회봉사 OOO시간’이라고만 선고하고, 구체적인 분야나 방법은 법무부 산하에 있는 전국 44개의 보호관찰소가 정한다.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사람의 성별·연령·거주지·보유기능·신체조건 등을 고려한다. 영구 임대 아파트 도배, 복지 시설에서 청소·빨래 봉사, 폭설 뒷수습 등 궂은일이 대부분이다.

최근엔 개개인의 특기와 적성을 살리게 하는 등 봉사 내용이 다양해지고 있다. 유명 그룹 멤버 천모(42)씨는 지역 주민들에게 재즈 피아노를 가르쳤고, 치과의사 김모(40)씨의 경우 노인요양시설에서 무료 치과 치료를 했다. 해커 등 사이버범죄자에게는 중고 PC 수리·배달과 청소년 컴퓨터 교육을 맡긴다. 모두 복지시설·대민 봉사에 해당한다.

암 환자 등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건강 상태에 맞는 일을 배당하기도 한다. 지난해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한 사람 중 60~69세는 547명, 70세 이상이 28명이었다. 이들 노약자에겐 복지시설 등에서 말동무를 해주거나 간단한 청소 일을 하도록 한다.

한 자릿수 봉사 시간도 정 회장(준법강의 2시간)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최단 봉사시간은 ‘10시간’으로 3명뿐이었다. 올 1~7월 기준으로 사회봉사 시간은 101~200시간이 43.1%로 가장 많고, 51~100시간이 41.3%였다.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의 전 부인인 주혜란(59)씨는 2003년 파크뷰 특혜분양과 관련해 돈을 받은 혐의로 법정 최장인 500시간 동안 경기도 안양시의 한 복지센터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

원칙적으로는 며칠씩 연달아서 하루 8~9시간씩 봉사해야 한다. ‘생계가 곤란한 경우에만’ 야간·공휴일 근무가 허용된다. 대리 출석이 많아 2005년부터는봉사시설에 설치된 화상 전화로 하루 두 번씩 본인 출석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사회봉사 명령에 응하지 않아 세 번 이상 경고를 받으면 법무부에서 집행유예 취소 청구를 한다.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실형을 사는 비율은 44% 정도. 집행유예가 취소되지는 않더라도 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 1~2주가량은 구치소에서 보내게 된다.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기업인도 적지 않았다. 최근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기업인으로는 전윤수(58) 성원건설 회장이 있다. 분식회계·사기 대출 등 혐의로 기소된 전 회장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사회봉사 명령 200시간이 확정됐다. 2003년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재관 전 새한그룹 부회장은 4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았다.

해외 스타들도 육체 노동을 명령 받아 화제가 되곤 한다. ‘여장(女裝)’으로 유명한 가수 보이 조지(46)는 지난해 8월 사회봉사 명령을 “패션·메이크업 강좌로 대신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뉴욕 거리에서 쓰레기 줍기를 해야 했다. 가정부에게 휴대전화를 던진 혐의로 체포된 수퍼모델 나오미 캠벨(36)도 지난 3월 뉴욕시 쓰레기장을 하루 7시간씩 닷새 동안 청소했다.

이제 김 회장은 서울보호관찰소의 감독 아래 사회봉사를 하게 되지만, 정 회장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손 과장은 “항소심 판결대로 형이 확정되면 매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제대로 집행되는지 알기 위해 우리가 회계감사까지 해야 한다”며 “강연원고, 기고문을 정 회장이 직접 쓰는지도 보호관찰관이 감독할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