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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사태 때도 1억 벌어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여의도 증권가를 찾은 '여수 고래 패밀리.'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가족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식 투자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말 그대로 가화주투성(家和株投成·가족이 화목하면 주식투자도 잘 풀린다)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가족의 힘으로 주식투자 성공기를 써가고 있는 5人의 ‘여수 고래 패밀리’를 만나 ‘가족형 대박 주식투자법’을 들어봤다.


‘고래들이 여의도에 출몰했다’.

8월 24일 여의도 증권가에 때아닌 고래 소동이 벌어졌다. 실제 고래가 아닌 닉네임을 고래로 쓰는 5인의 프로 트레이더(전업투자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 독야청청, 혼자서 자신만의 주식투자를 즐기는 재야고수들이 떼로 몰려 나타났으니 소동이 벌어질 만도 하다. 그것도 ‘고래’란 똑같은 닉네임을 가진 주식 고수들이 말이다.

이날 이들이 찾아간 곳은 CJ투자증권 실전투자대회 시상식. 1등부터 3등까지 상을 휩쓸고 나오는 고래들을 일망타진했다. 근데 잡고 보니 이들 모두 한통속? 다름 아닌 ‘고래 가족’이었다. 가족 도박단이 아닌 ‘가족 주식투자단’인 셈이다.

이들의 정체는 ‘여수 고래 패밀리’. 박현상씨(닉네임 왕고래)와 그의 처제 김미영(밍크고래)·김정미(돈고래)씨, 처남 김성부(여수 돈고래)씨, 박씨의 제자 조용삼(용고래)씨가 바로 그 주인공들. 이날 박현상씨와 김성부씨는 각각 3등을 했고, 김정미씨는 1등을 차지했다. 상도 타고, 서울 나들이도 할 겸 고래 가족이 모두 올라온 것이다.

‘여수 고래 패밀리’의 평균 나이는 28.2세. 젊은 고래들이다. 하지만 투자 경력은 총 27년이나 된다. 이 중 리더인 박씨는 투자 경력 10년의 베테랑. 나머지 고래들도 투자 경력이 4~5년인 프로급이다.

이들의 주특기는 초단타 매매. 하루 투자 종목만 5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스캘퍼(Scalper·초단기 투자자)들이다. 총 투자금액은 2억원 정도. 각자 자신이 정한 투자자금 내에서만 투자를 한다.

‘여수 고래 패밀리’의 근거지는 별칭과는 달리 광주다. 박씨가 사랑하는 아내의 고향을 따서 광주가 아닌 여수를 붙였다고 한다. 광주에서 주식한다는 개미들치고 이들을 모르면 ‘꾼’소리 듣기가 어려울 정도.

또 광주 증권사 지점장들에게 이들은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다. 하루 거래대금만(매수+매도 총 금액) 50억원이 넘는 ‘큰손’들이기 때문. 주식거래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인 증권사 지점들로서는 하루 50여 개 종목에, 50억원 이상 투자하는 이들이야말로 대박 고객인 셈이다.

‘여수 고래 패밀리’가 결성된 것은 2004년이다. 고래란 아이디를 가장 먼저 쓴 것은 막내 김성부씨. 왜 고래였을까.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바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래라서 그렇게 지었죠.”(웃음) 이후 패밀리들은 모두 닉네임에 고래를 붙였다.

주식투자를 위해 뭉치자고 제안한 것은 최고 연장자이자 베테랑 박현상씨.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제자들이 똑같이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용삼씨는 물론 처제와 처남도 모두 그에게 주식투자를 배웠다고 한다.

“주식투자를 배우기 위해 실패도 많이 하고, 엄청난 수업료를 지불했죠. 깡통을 찬 것만도 몇 번인지 몰라요. 사실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실패는 피해갈 수 없다고 봅니다. 문제는 실패의 정도죠. 제 경험을 바탕으로 가족들은 최소한의 실패로 성공하기를 바랐죠.”(박현상)

박씨가 본격적인 주식투자에 나선 것은 98년 대학 2학년 때부터다. 당시 주식투자로 어느 정도 재미를 본 그는 용돈은 물론 집안의 재산까지 투자하기 시작했다.

“상가 월세까지 투자했지만 부모님들은 반대하지 않았어요. 저를 믿었던 거죠. 단지 ‘욕심 부리지 말라’고만 당부하셨어요. 주변 사람들에게는 주식투자로 대박을 칠거라며 잔뜩 멋만 부리고 다녔죠.”

하지만 그에게 주식은 ‘이브의 사과’였다. 잠깐의 꿀맛은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왔다. 외환위기가 터진 것이다. 그는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부질없는 투자를 계속했고, 결국 부모가 한 평생 일궈온 상가건물을 날리고 만다. 당시 그가 주식투자로 입은 손실 금액은 3억원 정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당뇨합병증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했죠. 병원비 2000만원이 필요했는데… 그때만큼 제 자신이 한심할 때가 없었어요. 2004년 투병 끝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아버지의 휠체어에 앉아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후 박씨는 학업을 포기하고 프로 트레이더가 되기로 결심한다. 주식으로 실패한 것을 주식으로 만회하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 여러 번의 깡통 경험 끝에 박씨가 재기에 성공한 것은 2004년부터다. 친구들과 함께 만든 광주 소재 금융학원(Bullnet)에서 강사로 지내면서 주식투자를 함께 했던 그는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 나가 종자돈을 불렸다고 한다.

처제와 처남, 그리고 조용삼씨가 그에게 주식투자를 본격적으로 배운 것도 이 금융학원에서다. “주식 대박은 없었어요. 차근차근 경험과 투자자금을 늘려갔죠. 증권사 실전투자대회는 재기를 노리는 저에게 매우 좋은 기회였죠. 종자돈을 늘리면서 경력도 쌓을 수 있으니까요. 프로급인 고래 패밀리들이 증권사 실전투자대회에 자주 나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프로 트레이더로서 박씨의 개인적인 목표는 40대 중반까지 현금 200억원을 모으는 것이라고 한다. 과연 지금까지 그는 얼마나 벌었을까. “그건 비밀입니다. 이제 100보 중 10보 정도 왔다고 보시면 돼요. 아직 갈 길이 멀죠. 200억원이라는 것은 숫자상의 목표고, 궁극적으로는 돈에 구애 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죠.”

고래들의 일과는 보통 아침 7시30분부터 시작된다. 사무실은 박씨의 아파트에 설치된 트레이딩 룸. 출근 이후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정보 분석이다. 국내외 아침 뉴스와 시황 등 정보 분석을 통해 전날 찜했던 200여 개 종목 중 50여 개의 투자종목을 추린다고 한다.

종목별 정보 분석은 5명이 각각 분담하고, 최종 투자종목 선택은 합의를 통해 뽑는다. 주요 투자대상 종목은 전날 상한가 또는 하한가를 기록한 종목, 대북 관련주 등 테마나 이슈가 있는 종목들이다. 투자종목 선택 시 작전 낌새가 있는 것은 철저하게 배제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일반 투자자들은 프로 트레이더들이 작전세력이나 작전주를 하는 것으로 알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입니다. 절대 작전주는 거들떠보지 않죠. 일반 종목 중에서 상승 흐름이 예상되는 종목들만 투자합니다. 때문에 정보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죠.”(조용삼)

한국판 ‘버크셔 해서웨이’가 꿈

8시50분부터 고래들은 본격적인 거래 준비에 나선다. 이때부터는 모든 신경은 각자의 모니터에 집중된다. “각자 맡은 종목의 동시호가 물량을 체크하면서 주가 흐름을 예상하죠. 정각 9시부터 그야말로 초 싸움이 시작됩니다. 종목별로 호가 흐름을 체크하면서 짧게는 10초도 안 돼 종목을 샀다가 팔기도 하죠.”(김정미)

가족 간 팀워크가 본격적으로 발휘되는 것은 장중 시황이나 투자종목의 주가가 급변할 때다. 5명이 각자 시황, 공시, 차트, 거래 등을 맡으면서 마치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고 한다.

“역할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지만 누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고 있죠. 아마도 혼자 이익만 취하려는 전업투자자들끼리 모였다면 불가능한 일일 거예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박현상)

가족 간 팀워크는 증시가 롤러코스트를 탔던 8월 중 가장 빛났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장으로 주가가 그야말로 요동친 한 달이었지만 ‘여수 고래 패밀리’는 3주 만에 1억원 정도의 이익을 챙겼다고 한다. 가족 간 팀워크로 손실은 최소화하고, 수익은 극대화한 것.

“그렇다고 매일 수익을 얻는 것은 아닙니다. 잃을 때도 있죠. 어떤 투자든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김성부)

이들의 성공 비결은 절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가가 예상과 달리 움직이면 바로 손절매하고, 예상만큼 오르면 매도해 이익을 취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장 마감 전에 모든 종목을 청산한다고 한다.
“욕심 때문에 기다리거나 주저하는 것은 프로가 아니죠. 정해진 룰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전업투자자로 돈을 벌 수 있죠.”(김미영)

‘여수 고래 패밀리’의 최종 목표는 가족형 투자전문회사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최근에는 한 투자회사에 지분 참여를 검토 중에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노하우를 가지고 투자전문회사를 만들 계획입니다. 우리와 같은 개미들의 자산을 운용할 계획이죠. 우리의 최종 목표는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와 같은 투자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박현상)

용어설명

스캘퍼(Scalper)란 데이 트레이더(Day Trader)보다 빈번히 주식을 매매하는 초단기 투자자를 말한다. 본래 스캘프(Scalp)란 말은 인디언들이 적의 머리 가죽을 벗긴 전리품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구어체로 ‘박리를 챙기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즉 주식시장에서 스캘퍼란 ‘초박리를 취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임상연 기자 sy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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