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이 앗아간 인간성 되찾기-이형기.오세영씨 신작시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원로시인 李炯基씨와 중진시인 吳世榮씨가 나란히 신작시집을 펴냈다.「싱싱한 미적 감성으로 기술이 지배하는 삶의 모순 극복」을 내세우고 고려원이 기획한 「고려원현대시인선」1,2권으로 李씨는『죽지 않는 도시』,吳씨는『어리석은 헤겔』을 각각 내놓았다. 『이념주의자들에겐 유미주의자로,철없는 유미주의자들에게는 또모럴리스트로 몰려 공격받았다』고 吳씨 스스로 밝히고 있듯 이들의 시에서는 시류를 타지않은 한국현대시의 꿋꿋한 본류를 바라볼수 있다.『이 아파트 단지에서는/아무도 달을 쳐 다보지 않는다/증권시세표가 아닌 달/텔레비전 연속극이 아닌 달/더구나 화염병도 최루탄도 아닌 달/그래서 달은/대낮에도 15층 옥상에 내려와서/나물 먹고 물 마시고/팔을 베고 누워서/오 자유여/이제야 제 시간 제 맘대로 즐기는/실업자 가 된 달의 자유여』.
李씨의 시집『죽지 않는 도시』에 실린「달의 자유」 全文이다.
50년『文藝』지를 통해 등단한 李씨는『적막강산』『꿈꾸는 한발』『그해 겨울의 눈』등 6권의 시집을 펴내며 삶과 존재의 근원을물어왔다.
위 시「달의 자유」에서처럼 달은 증권과 같은 경제적인 것도,화염병.최루탄처럼 사회를 개혁하거나 유지하는 사상이나 이념도,그렇다고 연속극 같은 흥미거리도 아니다.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간절하게 이어주던 달은 이제 이성과 과학의 시대 를 맞아 실업자가 돼버렸다고 李씨는 풍자한다.물질과 효용만을 좇는 현대문명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68년 『現代文學』지를 통해 등단한 吳씨는 『반란하는 빛』『무명연시』『불타는 물』등의 시집을 펴내며 실존적 고뇌위에 독특한 서정의 세계를 꽃피워왔다.『어리석은 헤겔』에 실린 66편의시에서 吳씨는 간결한 서정으로 삶과 세계를 황폐 화시키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얼어야 비로소 수직으로 서는/물처럼/하늘로 곧추 선 저,/시멘트와 유리의 이념./얼지 않으면 이념이 아니다./ 얼음은 미끄럽다./빙폭을 오르다가/미끄러져 떨어지는 클라이머처럼/아뿔사/실족해 추락하는 이념의 맹신자.』 시「불타는 얼음」의 일부다.시멘트와 유리로 세워진 현대식 빌딩을 아래로의 자연스런 흐름을 거슬러 위로만 굳어가는 氷瀑에 비유하고 있다.빌딩으로 대표되는 물질적 현대문명을 들어 吳씨는 인간적 감성을 죽여가며 경제의 합리적 높이만을 위해 치닫는 현대의 정신을 추락하고 말굳은 이념과 다름없다고 비판하고 있다.시류에 휩쓸릴수 없는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시 특유의 서정으로 환기시켜온 두 원로.중진시인들의 신작시집에는 세기말적 시류로도 볼수 있는 문명비판의식이 강하 게 드리워져 있다.
〈李京哲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