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개선안 심의 촉진돼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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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이 11일 발표한 「94년도 사법행정발전 기본계획」은 제2단계 사법제도 개선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변화에 대한 적응이 늦다는 평을 듣던 보수적 사법부가 최근들어 민주적·효율적 법운용과 국민생활편의를 위해 발빠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이번 발표한 계획에 포함된 북한법 및 통일후 사법제도 연구는 뒤늦었다 할 정도로 시급한 것이다. 통독후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법적 혼란에 비추어 볼때 우리도 사전에 충분한 대비를 해놓지 않는다면 큰 혼란에 부닥칠 것이 틀림없다.
각종 특가법을 정리하기로 한 것도 잘한 일이다. 법체계상으로 볼 때는 특별법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선작업때 여건변화에 따라 꼭 필요하지 않게 된 특별법은 아예 형법에 모두 흡수해버리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법적 형편을 깨뜨리고 있는 특가법의 중형주의만이라도 마땅히 대폭 손질되어야 한다.
대법원이 이번에 마련한 계획은 84개 항목이나 되지만 아직도 덧붙여야 할 것이 적지 않다. 너무도 형식적이란 평을 받고 있는 즉심제의 강화방안이 그것이요,유명무실하다 할 국선변호인제의 강화도 그 하나다. 이밖에 재판순서 결정의 불합리,변호사조력권의 제한,경매업무의 난맥상,보호감호처분의 불합리 등도 국민들이 절실하게 개선을 바라고 있는 사항들이다. 84개 항목의 개선에 그칠 것이 아니라 민주적·효율적 사법운용을 위해 게속적으로 새로운 개선과제를 추가해 나갈 것을 당부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법부의 개선노력도 국회의 협조가 없이는 현실화할 수 없다. 이번에 발표된 84개 항목의 개선계획중에도 법개정이 필요한 항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에는 국회에서의 신속한 법률심의가 있어야 비로소 실행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법원이 국회에 낸,사법제도개혁을 위한 법률안마저도 지난 4월21일 법사위에 상정만 된채 전혀 심의가 되고 있지 않다. 국민들이 빠른 처리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데도 상무대 사건 국정조사 등 정치현안으로 인한 국회 표류로 이런 중요한 민생법안의 처리마저 도매금으로 표류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할만하다. 정치현안은 어찌되든 여야는 우선 사법제도개혁법률만이라도 빨리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닌가. 착수만 한다면 단시일안에 끝낼 수 있는 사안을 미루고 있는 국회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빨리 법사위만이라도 열어 모처럼 마련된 개혁법률안의 심의를 신속히 진행시켜야 한다.
아울러 검찰도 대법원이 한 것 같은 검찰 관련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해 민주적이고 국민편의적인 개혁안의 성안을 촉구한다. 왜 검찰은 시대요구에 둔감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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