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가있는아침] ‘낙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9면

바람 속에

저 눈부신 꽃자리에

눈을 감는 허공에

꽃이파리가 떨어진다

내 몸 어디

캄캄한 가지 속에서

햇잎이 저를 밀어올리는 것인가

백목련 건너 모과나무 한 그루

주 선 채 아침놀 받고

밤 사이 누가 왔나보다

온몸이 흥건하다


  일 년간 만나지 못한 친구. 내년에도 못 만날 친구. 낯설기도 한 이름이 되었다. 나는 늘 자기 죽음의 환상을 본다. 그 속에 꽃잎이 떨어진다. 마음의 두 손이 꽃잎을 받는다. 유한의 세계에서 자기동일성을 갈망하고 세계와 일치하려는 간절한 마음의 덧없는 몸짓. 시인들의 언어를 말해 무엇하랴. 새벽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고독한 삶을 살다 떠난 나의 친구의 시다.

<고형렬·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