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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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더 먼 곳을 향하여(25)웅삼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어디 틀린 말 했나? 밥 먹으면 밥값은 하자는 게 뭐잘못됐냐구.』 『말이라는 게 한다구 다 말 되는 건 아니지만,지금 우리 보고 밥값하랄 때는 아닌 거 같구만 그래.』 『말 잘 하는 놈 변호사 되고,말 못하는 놈 똥짐지는 세상인 줄이야알았지만,어디 세상에 입 없어서 말 못하고 산 사람 있다던가.
난들 모여라 헤쳐라 뭐 하고 싶어서 한답디까.시키니까 하는 일인데 이런 땔수록 거 뭐 좀 협조적으로 나오면 어디 덧난답디까.』 수염이 더부룩한 조씨가 벌레 씹은 얼굴을 하고 중얼거렸다. 『지금 일 나가게 생겼냐 그 말이오.』 옆에 섰던 이씨가 말을 거들었다.
『내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소만,경우가 그렇지 않소.조선놈은 죽을 줄만 알았지 왜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어야 한답디까.』『그건 그려.이러고 엎어져 있을 일이 아니구만.』 웅삼이가 목젖을 흔들며 화를 냈다.
『도둑놈 편들자 그 얘깁니까?』 『도둑놈이라니!』 『아 도둑질하다가 잡혀 간 거야 우리가 다 아는 일 아니냐 말입니다.』『어디 도둑놈이 날 때부터 도둑놈인가.배냇도둑이란 없는 거여.
춥고 배고프니 훔치는 짓이라도 하는 거지.죽은 것도 서러운데 동포끼리 그러는 거 아니구만.』 김씨가 땅바닥에 주질러 앉으며말했다. 『오나라가 망하든 초나라가 망하든 내 알 배 아니지만거 말들을 너무 막하는구만.목 마르면 우물로 가면 될 일이 아닌가.따질 일이 있으면 웅삼이가 아니라 노무계에 가서 따지든가해야지 이 사람이 무슨 죄 있다고 여기서들 이러는 건 지 모르겠네.』 사람 죽은 거 쉬쉬하지 않고 조선에 알렸고,부모가 오는대로 장례는 치를 것이지만 그때까지 마냥 그대로 둘수는 없으니까 화장을 했다가 뼈만 모아두기로 했다더라는 말을 전하면서,웅삼이 나도 모르겠소 하며 뒷짐을 졌다.
『문제는….』 『도둑놈이면 도둑놈으로 해야지 왜 멀쩡한 사람을 죽여놓고 탄 캐러 들어갔다고 하느냐 그거 아니겠어.이런 식으로 한다면 누가 일을 나가겠느냐 그거요.될성 부른 소리를 해야지,안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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