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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중견기업] “닛산·GM·포드차도 우리 와이퍼 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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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캐프는 세계 5대 와이퍼(차량 유리 닦는 장비) 생산업체다. 르노삼성자동차의 와이퍼가 모두 캐프 제품이다. 일본 마쓰다·닛산과 미국의 GM·다임러 크라이슬러에도 와이퍼를 공급한다. 내년 5월 포드 납품이 성사되면 미국 ‘빅3’ 자동차 회사에 다 들어가는 셈이다. 올해 예상 매출은 730억원, 순이익은 86억원으로 탄탄한 실적을 기대한다. 설립 12년 만의 성과다.

 순풍에 돛 단 듯하지만 원래 그런 건 아니었다. 이 회사 고병헌(59·사진) 회장이 회사를 세운 건 1996년. 그때까지 대구 지역의 한 와이퍼 생산업체 월급 사장이었다. 이제 승용차를 막 생산하려던 삼성자동차의 전폭적 지원을 약속받고 독립을 결심한 것이다. 창업 자금의 절반을 무이자로 대주는 대신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삼성자동차에만 와이퍼를 공급한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외환위기가 터졌다. 갓 출범한 삼성자동차는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조업을 중단했다. 공장 설립, 제품 개발에 쏟아 부은 80억원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오갈 데 없는 직원 80여 명과 함께.

 그는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 대신 전 직원이 와이퍼를 들고 전국 카센타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물건이 괜찮은 데다 이를 악물고 뛰니 기대 이상의 성과가 났다. 두 달 만에 40만 개의 와이퍼가 팔린 것. 캐프는 사업 전략을 수정했다. 대기업 납품에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직접 와이퍼를 고르는 ‘애프터서비스 시장’에 집중해 보자는 것이었다. 완성차 업체 납품과 유통업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회사의 안정적 수익원으로 삼고, 또 한편에선 독자 브랜드 와이퍼 ‘뷰 맥스’로 이문을 많이 남기는 이원화 체제를 시작한 것이다.

르노삼성에 독점 공급 조건이라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특히 해외 소비자 구매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 애썼다. 2004년 세계적 자동차 부품업체인 보쉬·발레오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개발한 ‘플랫 와이퍼’가 해외 진출에 날개를 달아 줬다. 이는 유리닦개 부분이 일(一)자로 이어져 겨울에도 와이퍼가 얼 염려가 없고 외관도 뛰어나다. 2005년 세계적 석유회사 셸의 주유소에 플랫 와이퍼를 납품하는 계약을 했다. 지난해엔 미국·캐나다 전역의 월마트(3800여 곳)와도 계약했다. 고 회장은 “미국 월마트에서 팔리는 와이퍼 세 종류 모두 우리 제품이라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런 성공과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가 아닌 생존이에요. 많은 중소기업이 눈앞의 이득에 급급해 직원 교육이나 연구개발(R&D)에 충분한 돈을 쓰지 못합니다.” 기업을 영속시키겠다는 욕심을 갖게 되면 이런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회사를 차린 것도 ‘멀리 보는 경영을 맘껏 해 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다.

캐프의 연구 인력은 26명. 지난해엔 매출의 8%에 해당하는 3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국내 최초로 플랫 와이퍼를 개발한 저력도 여기서 나왔다. 고 회장은 “2년 정도면 중국도 값싼 플랫 와이퍼를 개발해 우리를 쫓아오겠지만 이미 후속 모델을 개발해 두었다”고 자신했다. 내년 중에 20여 가지 신제품을 낼 예정이다. 코팅이 잘 돼 와이퍼 없이도 비가 튕겨 나가는 차량 유리가 궁극적인 진화 방향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대구 대천동 성서공단의 캐프 공장 입구에는 ‘평생 한 가족’이라는 간판이 큼지막하게 걸려 있다. 사규에도 ‘종신 고용이 원칙’이라고 못 박았다. 이 역시 ‘영원한 생존’을 위한 고 회장의 철학이 담겼다. “정년 걱정 없이 일하는 선배들을 보면 후배들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아지겠느냐”는 것이다. “나도 앞으로 30년은 더 일할 자신이 있다”며 웃었다.

캐프는 다음달 경북 상주시에 8만5000여 평 규모의 공장을 연다. 밀려드는 주문, 신규 납품 계약 물량을 대기 위해서다. 상주는 그의 고향이다. 현 직원이 290여 명인데, 상주 공장에 고용할 인력이 230명에 달한다. 고 회장은 “임대료가 싼 공장 부지를 찾다 보니 자연히 고향을 찾게 됐지만 사업을 일으켜 고향에 일자리를 많이 만들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2002~2005년 4년간 캐프는 11월 30일 무역의 날에 빠짐없이 ‘수출의 탑’ 상을 받았다. 100만불탑(2002년)·300만불탑(2003년)·500만불탑(2004년)·1000만불탑(2005년)으로 금액이 쑥쑥 불었다. 올해는 2000만불탑, 내년엔 3000만불탑을 기대한다. 이를 위해 인도와 독일에도 곧 진출할 계획이다.

임미진 기자

캐프는
-설립 : 1996년
-대표이사 : 고병헌 회장
-본사 : 대구시 대천동
-사업장 : 엔진 튜브 공장(경남 창녕군), 고무 공장(중국 광둥성 장먼시), 와이퍼 공장(경북 상주시, 10월 완공 예정)
-임직원 수 : 29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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