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환율관리 비상에 보유 외환 이례적으로 풀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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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국은행이 외환 스와프 시장에 개입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시장은 받아들이고 있다. 한은이 외환 스와프 시장에 개입한 것이 처음인 데다 평소 “시장에서 생긴 문제는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해 왔던 한은 이성태 총재의 철학과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날 외환시장, 더 좁게는 외환 스와프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엉망이 된 외환 스와프 시장=외환 스와프 시장이 엉망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에서 비롯된 국제 금융시장의 혼란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집어넣은 금융상품들이 줄줄이 부도가 나면서 이를 막기 위해 세계적으로 달러화 부족 현상이 일어난 것. 이는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쳐 단기간 달러 부족 사태가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당장 달러 선물환 시장에서 문제가 생겼다.

 선물환이란 수출업체가 나중에 받기로 한 수출대금을 현재의 환율에 고정시켜 두는 것으로 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이를 은행에 미리 파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A사가 원-달러 환율이 950원일 때 1년 뒤 1억 달러를 받기로 수출 계약을 했다면 A사는 1억 달러어치의 선물환을 은행에 현물 환율(950원)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서 벗어난다.

 이런 상황을 십분 이용한 것이 외국 은행의 국내 지점들. 이들은 국내 은행보다 싼 금리로 달러를 빌려올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수출업체와 국내 은행이 파는 선물환을 사들이고 달러를 팔았다. 달러를 팔아 생긴 원화로는 국내 채권에 투자했다. 문제는 수출이 잘돼 선물환을 팔고자 하는 수출업체가 많다 보니 선물 환율의 값이 계속 떨어진 것이다. 외은 지점 관계자는 “해외의 본사나 금융회사로부터 달러를 빌려오기가 쉽지 않은데 선물환 매도 물량은 여전히 많다 보니 선물 환율이 정상 수준을 벗어났다”고 말했다. 3년물 선물 환율의 경우 현물 환율보다 많아야 16원 정도 쌌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직후엔 이 차이가 34원까지 벌어졌다.

 대우조선해양의 외환 관계자는 “선물 환율이 하락하면 나중에 원화로 받게 되는 수출대금이 계속 줄어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은 개입 성공할까=한은은 11일 외은 지점의 역할을 대신했다. 수출업체 입장에선 한은이 선물환을 사준 것이다. 사는 쪽이 넉넉해지면 크게 벌어졌던 현물 환율과 선물 환율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다. 실제로 11일 장 초반 21원까지 벌어졌던 현물 환율과 선물 환율(3년물)의 차이는 한은의 개입 이후 18원으로 좁혀졌고, 12일엔 13원까지 떨어졌다.

 또 한은이 보유 외환을 풀어 외은 지점 역할을 대신함에 따라 단기 외화 차입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선물환 매도 규모가 지나치게 많기 때문에 한은의 개입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시장이 일단 정상 궤도로 복귀하면 그 효과는 상당 기간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며 “하지만 한은의 선물환 매수 규모나 향후 지속 여부는 밝히기 어렵다”고 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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