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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드매니저 24時] 수익률 전쟁에 울고 웃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포브스코리아요즘처럼 주가 변동이 극심한 때면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들은 잠을 못 이룬다. 취업생이 꼽는 유망 직종이나 배후자감 1순위에 올라 있는 펀드매니저. 국내 펀드 계좌 수(6월 말 기준) 1,588만 개로 1가구 1펀드 시대가 열리면서 이들의 몸값도 덩달아 치솟았다. 그러나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과중한 업무와 운용 스트레스가 만만찮다.

▶1971년 生 · 연세대 경제학 석사 · 삼성생명 펀드매니저 · 현 삼성투신운용 LT 주식운용본부 펀드매니저
여의도 증권가에 서 있는 남동우 펀드매니저.

본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숨막히는 수익률 전쟁을 치르는 펀드매니저의 일상을 취재했다. 8월 10일 삼성투신운용 LT주식운용본부에서 만난 남동우(36) 펀드매니저는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운용 전문가다. 그는 9,000억원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고, 대표 운용펀드인 ‘삼성당신을위한리서치펀드’는 올해 설정한 펀드 중 수익률과 자금 규모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


해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순식간에 구름은 여의도 하늘을 까맣게 덮었고,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건 빗줄기만이 아니었다. 주식 매매프로그램이 켜진 컴퓨터에도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다. 한참 동안 모니터를 주시하던 남동우 펀드매니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 어, 이런 지수가 급격히 하락하는데요.” 주식운용본부 이곳저곳에서는 펀드매니저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날씨만큼 예측하기 힘든 게 주식시장입니다. 오늘처럼 주가가 곤두박질하면 피를 말리는 느낌이에요. 최대한 펀드 수익에 피해가 없도록 대책을 세워야겠습니다.”

8월 10일 주식시장은 개장 직후 곧바로 55포인트 하락하면서 ‘증시 블랙데이’를 암시했다.

남 펀드매니저가 사무실에 들어선 시간은 오전 7시10분. 그는 10여 개 증권사 보고서와 회사로 배달된 녹즙을 챙겨서 자리에 앉았다. 한 손으로는 보고서를 넘기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녹즙을 마셨다.

다 마신 후에는 왼쪽 서랍에서 홍삼 액기스를 꺼낸다. “제 건강식입니다. 하루 14시간 이상 일하면 몸이 축나죠. 잘 먹고 힘내야죠.” 그러고 보니 남 펀드매니저의 책상 아래에 있는 박스 안엔 실온 보관하는 보약이 가득하다.

7:30 AM 주식운용본부 전체회의

사무실 안이 분주해졌다. 남 펀드매니저가 수첩과 보고서를 챙겨 일어났다. “금요일은 주식운용본부 전체회의가 있습니다. 운용팀과 전략팀이 한 자리에 모이죠.” 회의실 안에는 이미 30여 명의 펀드매니저와 운용사 애널리스트가 원목 테이블을 중심으로 삥 둘러 앉아 있다. 인터넷담당 애널리스트가 최근 2분기 실적을 발표한 NHN과 엔씨소프트 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양정원 삼성투신운용 본부장이 남동우 펀드매니저를 돌아보면 묻는다. “남 펀드매니저는 엔씨소프트의 향후 주가 전망을 어떻게 보나?” 그는 엔씨소프트의 분석 자료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며 답했다. “2분기 실적은 하락했지만 향후 전망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엔씨소프트의 풍부한 자금력과 게임 기술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합니다.”

8:25 AM 펀드 운용 준비

남 펀드매니저가 컴퓨터 파워 버튼을 누른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운용에 앞서 이뤄지는 준비운동이라 할 수 있죠. 저는 개장 전에 운용에 필요한 모든 자료를 준비해 둡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식시장에 바로 대응하기 위해서죠.” 이윽고 윙~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 화면이 켜졌다. 인터넷이 연결됨과 동시에 수십 개의 메신저 창이 열렸다. 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오전에 발표한 종목 보고서나 기업 정보를 알리는 서비스다.

회사 메일함을 열자 안 읽은 메일이 1,027개나 눈에 띈다. “메일이 쌓여가네요. 하루에 보통 200통의 메일이 배달돼요. 이 중 70%가 증권사 보고서예요. 장이 끝난 후에나 봐야겠습니다.” 그는 메일함을 닫고 컴퓨터 파일을 정리했다. 그 중 600개 이상의 관심종목 리스트를 출력했다. 그의 보물이다. 워낙 운용하는 종목이 많다 보니 필요한 종목은 이렇게 출력해서 컴퓨터 옆에 놔두고 필요할 때마다 열어본다.

9:00 AM 주식시장 개장

“1,900선이 깨졌네요. 3일간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조정을 받네요.” 종합주가지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강 곡선을 그렸다. 20분 만에 지수는 1,840선까지 밀려났다. 남 펀드매니저가 모니터 화면을 가리킨다.

“이때 ‘삼성리치피펀드’를 함께 운영하는 이동식 본부장이 그를 급히 불렀다. “어제 펀드 계좌에 110억원이 들어왔거든. 지금 당장은 펀드에 반영하지 않는 게 좋겠어. 변동 폭이 워낙 크니 시장 상황을 더 지켜보도록 하지.”

남 펀드매니저는 “오늘처럼 주가가 많이 빠진 날은 평소보다 2~3배 더 힘들다”고 한다. “매매시스템에 파란 불이 들어온 순간부터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수익률도 하락하게 마련이죠. 고객이 믿고 맡기는 자금인데 손실이 나면 큰 일입니다.”

한참 동안 주식시장 움직임을 살펴보던 그가 매도 주문을 내기 시작했다. “지수가 1,830선까지 더 하락할 거 같습니다. 주가가 더 빠지기 전에 차익실현을 하는 겁니다. 지수 하락률과 비교해 이미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 위주로 파는 거죠.”

남 펀드매니저의 눈은 모니터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운용 철학은 두 가지다. 첫째는 고객의 돈을 절대 잃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첫째 약속을 꼭 지키는 것이다.

11:40 AM 샌드위치 미팅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LG필립스LCD IR팀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김종현 LG필립스LCD IR부장은 미리 준비해온 2분기 실적보고서를 보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남 펀드매니저는 신중히 LG필립스LCD 주가 그래프를 보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지난해 8,000억원 이상 적자를 냈던 기업이 단기간에 흑자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패널 가격이 안정세를 찾으면서부터죠. 패널 가격을 하반기에도 안정적으로 유지한다면 매출이나 주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IR팀과의 미팅은 1시간가량 진행됐다. 점심은 샌드위치와 음료수로 대신했다.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습니다. 일부러 IR미팅을 점심 때 잡는 경우도 많죠. 저희는 샌드위치 미팅이라고 부릅니다.”

02:50 PM 장 마감 10분 전

장 마감이 가까워지면서 남 펀드매니저의 말수가 줄어들었다. 지수는 예상대로 80포인트 이상 빠지면서 1,830대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장 마감 10분 전 그의 손이 빨라졌다. 그는 이날 처음으로 매수 주문을 넣기 시작한 것. 이 작업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주식시장이 끝나자 그제야 숨을 돌린다.

“사실 하루 종일 매수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어요. 이렇게 지수가 급격히 빠지는 날에는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렴한 종목을 더 싸게 살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수가 가장 많이 빠진 장 마감 10분 전이 오늘 최고의 매수 타이밍인 셈입니다.”

장이 종료된 후 2~3분 만에 펀드 성적표가 발표됐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 수익률은 -4.11%. 종합주가지수가 하루 만에 80포인트(-4.2%)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선방한 셈이다.

03:15 PM 기업 탐방

남 펀드매니저가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기업 탐방을 가려고 합니다. 적어도 한 주에 한 번은 직접 기업을 방문하죠. 공장을 방문하고 사장을 만나 보는 게 기업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날 그가 방문한 회사는 내비게이션업체인 팅크웨어다. 이 기업은 그가 직접 발굴해 큰 수익을 올린 효자종목이다. “저는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자연스럽게 내비게이션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여러 가지 내비게이션을 사용해 봤는데 팅크웨어 제품인 아이나비가 제일 낫더군요. 그때부터 여러 차례 회사를 방문하면서 실적이나 성장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봤죠.”

지난해 6월에는 과감히 투자를 결정하고 주당 8,300원에 주식을 사들였다. 현재(8월 17일) 팅크웨어 주가는 3만8,850원으로 네 배가량 올랐다.

07:00 PM 보고서 작성 및 하루 일과 정리

그가 회사로 다시 돌아온 건 오후 7시가 다 돼서다. 그는 아침에 읽지 못했던 e메일을 살펴보거나 신문을 읽었다. 오늘처럼 기업 탐방을 다녀온 날은 바로 보고서를 작성한다. 성장 가능성을 점검하고 더 보유할지 아니면 팔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하루의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선 시간은 밤 11시가 넘어서다. 아내와 딸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다. 남 펀드매니저는 피곤했지만,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익률만 생각하면 잠이 잘 안와요. 오늘 매수한 종목이 제대로 오를지도 걱정이에요.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한 종목인데 시장에서는 당장의 수익률만 중시하죠. 주가가 오를 동안에는 마음 고생 좀 할 것 같습니다.”

남동우 펀드매니저의 펀드 투자 7계명

1 고객의 돈을 소중히 생각하라.
2 내 가족이 살 집을 고르듯 종목을 선정하라.
3 최소 5년 이상 묻어둘 종목에 투자하라.
4 가장 쌀 때 사서 가장 비싸게 팔아라.
5 투자할 기업의 서비스(제품)는 꼭 이용해 봐라.
6 기업 실적과 무관한 기술력은 무시해라.
7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라.

대표 운용펀드 - 삼성당신을위한리서치펀드

‘삼성당신을위한리서치펀드’는 올해 신규로 설정된 펀드 중 설정액과 수익률에서 모두 1위다. 이 펀드 수탁금액은 8월 20일 기준 7,129억원에 달한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38.41%. 종합주가지수가 최근 한 달새 300포인트 이상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높은 편이다. 과거 성적을 보면 상반기 수익률은 39.62%를 기록했고, 7월 중에는 59.22%까지 올랐다.

펀드 운용은 남 펀드매니저 외에 이동식 본부장과 김상철 펀드매니저가 맡고 있다. 남 펀드매니저는 “이 펀드는 철저한 기업 분석(리서치)을 통해 장기 성장이 예상되는 주식을 선별 · 집중 투자한다”고 소개한다.

특히 기업의 자체 경쟁력이 강화됐거나 5년 이상 안정적인 이익 증가가 예상되는 기업에 투자한다. 투자한 기업이 단기간에 목표 주가에 이르렀을 경우에는 적정주가에 도달했는지 판단하고 확신이 서면 과감히 판다. 반대로 1년 이상 지나도록 주가가 오르지 않아도 조급해하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투자해 수익을 올린 종목에는 에스에프에이, 경남기업 등이 있다. 두 종목 모두 1만원 미만에 사들였다. 현재 주가는 각각 4만2,500원, 3만5,500원 등으로 세 배 이상 올랐다.

글 염지현 기자 / 사진 강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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