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에 뒤따르는 여진인양 요즘도 성적 관리에 문제있는 학교를 다룬 기사를 신문에서 이따금 접하곤 한다.
그런 유의 기사는 아무리 작게 취급된 것일지라도 고3자식을 가진 우리 같은 부모에겐 대문짝 이상의 큰 규모로 다가오게 마련이다.장난칠 게 그렇게도 없어 이젠 아이들 성적까지 갖고 장난친단 말인가.기껏 가라앉혔던 분노가 슬그머니 또 고개를 든다. 전쟁과 혁명.쿠데타 등을 두루 겪는 사이에 강심장으로 단련된 우리네 기성세대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각종 사건.사고에 잘 길들여져 이제 웬만한 일로는 놀라거나 분개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둔감해지고 담대해졌다.
그러나 자식들 교육문제 만큼은 전혀 경우가 다르다.이른바 상문고 비리가 터졌을 때 우리 부부를 휘어잡은 감정은 경악과 분격.절망이었다.요즘 유행하는 말 그대로 정말「우째 이런 일이!」였다. 옆에서 자식이 듣는 것도 아랑곳없이 우리는 마구 험구를 놀렸다.국가와 민족의 장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 아니었다.대학 입시가 당장 코 앞의 일로 닥쳐온 우리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였다.
내신 성적을 변조하거나 잘못 관리한 학교가 전국적으로 한 둘이 아닌데 내 자식과 상관없는 학교라고 해서 안심할 처지도 못됐다.당장 내 자식의 내신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학교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내신을 올린 어떤 학생이공교롭게도 내 자식하고 같은 대학,같은 학과를 지원함으로써 장차 결정적인 불이익을 주게 될지 누가 알랴.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이기적인 발상에 의해 상문고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을 문득 발견한 것은 흥분에 싸여아내와 함께 한바탕 성토대회를 벌인 다음이었다.정정당당히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여건조차 제대로 갖춰 주지 않은채 사랑하는 자식들을 살인적인 무한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땅의 부모로서 나는 내 아이와 그 또래 모두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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