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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교수의비즈니스협상학] 중동서 협상은‘커피 한 잔’이 시작 해외 사업? 현지 문화부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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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한국인이 최근 석방됐다. 국가정보원이 파견한 ‘선글라스 맨’이 탈레반 세력과 어떻게 협상을 했는지 궁금하다. 중동인과 서구인들은 상대가 시선을 피하면 자기를 속이거나 협상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반면 동양에서는 상대방 눈을 빤히 쳐다봐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 과거 일본에선 평민이 영주의 눈을 쳐다봐도 목이 날아갔다. 우리의 양반 문화 또한 이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외국인과 협상할 때 눈맞춤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울에 와 있는 외국인들이 가장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 ‘왜 한국인들은 자꾸 눈길을 피하느냐’는 것이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대화하는 게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된다.

국내 모 건설업체의 간부는 상대가 권하는 커피 한 잔을 거절했다가 중동에서 큰 수주를 놓친 적이 있다. 평소 커피를 안 마시는 그는 사우디아라비아 거래처 사람이 다정히 권하는 커피를 ‘노 생큐(No thank you)’라며 사양했다. 술을 꺼리는 아랍인은 커피 한 잔 권하는 것부터 협상의 실타래를 푼다. 일부는 밤을 새우며 취미·건강에서 시작해 가족 이야기까지 해가며 인간관계를 맺은 뒤 비즈니스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호의로 권하는 커피를 쌀쌀히 뿌리쳤으니 중동식으로 해석하면 관계 형성 자체를 거부한 셈이다.

중동이나 중남미에서 협상할 때는 살갑게 스킨십을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서양식 악수 대신 두세 번 힘껏 껴안는 게 좋다. 원래 이 관습은 상대가 칼을 숨기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협상의지를 확인하는 제스처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문화 권역별로 편안함을 느끼는 거리가 다르다고 한다. 대개 미국인이나 유럽인들은 한 팔 정도의 거리, 중동인이나 중남미인은 반 팔 정도가 자연스럽다. 그런데 동양인들은 한 팔 반이나 멀찍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외국인과 협상할 때는 좀 더 가까이 다가서도록 노력해야 한다. 상대의 문화를 잘못 이해하면 비즈니스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때 동남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 현장에서 노사분규가 잦았다. 대부분이 현지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빚어진 것이었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기업들은 어깨를 ‘툭툭’ 치며 생산 독려를 하고 별 생각 없이 머리카락을 만졌다가 혼이 났다. 동남아 노동자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분노했다. 해외 비즈니스를 잘하려면 해외 문화를 잘 이해해야 한다.

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 아무리 못사는 나라라도 고유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상대를 깔보고 덤벼들다가 아까운 비즈니스 기회를 날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안세영 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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