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행복지수 높이기] 3. 준비 된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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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싸운 적이 없어 시시해 어쩌지요? 혹시 오늘이라도 싸우게 되면 휴대전화로 연락드릴게요."

지난해 10월 결혼한 새내기 부부 조현성(32).구은영(31)씨는 "결혼 한 뒤 맞닥뜨린 갈등을 어떻게 풀고 있느냐"고 묻는 기자에게 도리어 미안하다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후 심한 입덧으로 결혼 전 계속해 온 피아노 강사일까지 접은 구씨. IBM 컨설턴트로 일하는 남편 조씨가 퇴근하는 오후 11시까지 매일 혼자 집을 지키는 신세다.

조씨는 하루종일 회사 일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와선 입덧으로 고생하는 아내 대신 청소 등 살림까지 해야 한다. 아내에게 아침밥을 차려 달라는 주문은 꿈도 못 꾼다.

이렇게 갈등을 빚기에 '충분한' 상황인데도 이들은 "힘들지만 화가 난 적은 없다"며 입을 모았다.

조씨와 구씨 부부는 결혼생활의 첫 단추를 '결혼학교'로 시작했다. 지난해 3월 '하이패밀리 사랑의 가정연구소'에서 주최하는 8시간짜리 '결혼예비학교'를 함께 다니는 것으로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됐다.

"주최 측에 아는 분이 있어 그분의 강권에 밀려 참석했지요. 그때만 해도 결혼을 결정하지 않았던 현성씨에게 같이 가겠느냐고 했더니 의외로 순순히 따라오더라고요."

구씨의 설명에 남편 조씨는 "사실 은영씨 마음에 들기 위해 따라갔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다.

결혼예비학교라고 해서 부부 사이의 대화법이나 갈등해소 방법을 주로 배울줄 알았지만 의외로 '나'에 대한 주제로 출발했다. 자신의 장점, 꿈, 불만, 좋아하는 사람, 고쳐야 할 습관 등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를 했다.

특히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남과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이 자리에서 조씨는 '성실하다'는 점을, 구씨는 '노래와 요리를 잘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구씨는 "남편의 입에서 스스로 성실하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 신뢰를 쌓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내 남편은 성실하다'는 믿음 때문에 매일 귀가가 늦어도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

또 ▶남자는 인정받기를, 여자는 이해받기를 원하는 등의 남녀 차이를 이해하라▶부모에게 정서적.경제적으로 의존하지 마라▶조언을 받을 만한 멘토 가정을 정하라 등의 교육도 이어졌다.

결혼학교는 이들에게 결혼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버리고 구체적인 마음의 준비를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구씨는 "결혼할 사람에게 예쁜 모습만 보여주려고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자신의 장.단점을 솔직히 드러내고 교제를 계속하던 이들이 결혼을 약속한 것은 지난해 5월. 결혼학교에서 배운 대로 두 사람은 혼수나 예물을 준비하기 전에 먼저 서로의 다짐을 적어 서명까지 한 뒤 주고받았다.

조씨는 ▶아내가 슬픈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고▶집안일은 서로 도우며 함께하겠다는 등 일곱 가지 약속을 적었다.

구씨도▶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겸손하게 살면서▶웃음이 가득한 집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했다. 또 두 사람은 평생 서로 존중하는 부부로 살겠다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쓰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준비된 부부'는 '준비된 부모'로 이어지고 있다. 오는 7월 부모가 될 이들은 태어날 아기에게 어떤 부모가 될 것인가에 대해 대화하느라 분주하다. 이들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의 다짐'을 완성해 부부의 서약서를 붙여 놓은 공책에 함께 적어둘 계획이다.

"아이에게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조씨의 말에 구씨는 "아이를 너무 빨리 가져 경제적인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슬쩍 고민을 흘린다. 하지만 함께 웃는 이들 부부의 표정에는 말과 달리 여유가 넘쳐 났다.

이지영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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