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1t에 1만원… 이산화탄소 사가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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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내에서도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사고파는 ‘탄소 배출권 시장’이 연말에 열릴 예정이다. 지구온난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의 80% 이상이 에너지 연소 과정에서 배출된다. [중앙포토]

“탄소 사세요. 1t에 1만원~!”

국내에서도 탄소 시장이 열린다. 최근 정부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탄소 배출권을 사고파는 ‘탄소 배출권 시장’을 올 연말에 연다고 발표했다. 탄소 배출권은 쉽게 말하면 “이 사람(기업)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원래 목표치보다 이만큼 더 줄였다”고 정부가 써준 인증서를 말한다. 탄소가 왜 시장에 나오게 됐는지 어떻게 거래되는지 알아본다.

 ◆탄소 왜 문제인가=탄소는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원소다. 지구 생태계 순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산화탄소는 물과 햇빛을 만나 포도당과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 작용을 이끈다. 탄소 성분은 또 동식물의 신진대사를 거쳐 대지로 되돌아와 광합성을 가능케 한다.

 하지만 탄소가 대기에 지나치게 많으면 지구온난화 같은 현상을 부른다는 게 기상학자들의 설명이다. 지구온난화는 과다한 온실가스 배출 때문에 생기는데 전체 온실가스의 80% 이상을 이산화탄소가 차지한다. 이산화탄소는 석탄·석유 등 지하 매장 자원의 연소 과정에서 주로 발생한다.

◆탄소 ‘다이어트’ 어떻게 하나=온실가스(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유엔환경개발회의에서 154개국이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97년 일본 교토에서 선진 38개국이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의정서에 서명한 36개국(미국과 호주는 탈퇴, 이하 의무감축국)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줄여야 한다. 나라마다 할당된 배출량은 다르지만, 기준 시점인 90년도에 비해 평균 5.2% 정도 줄여야 한다. 의정서 체결에 따라 탄소 배출권 거래도 허용됐다.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하는 국가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탄소 시장 생긴 까닭은=탄소 배출권 시장은 탄소를 배출할 권리를 국가나 기업끼리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 2002년 런던에서 선을 보인 뒤 현재 미국·독일·프랑스 등에 개설돼 있다. 세계은행(IBRD)에 따르면 시장 규모는 2004년 5억 달러, 2005년 110억 달러, 2006년 300억 달러(약 28조원)로 급성장하고 있다. 의무감축국이 자국 기업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도록 할당량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의정서에 따라 의무감축국이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배출량 감축 의무 이행에 들어간 것도 시장 성장에 한몫했다.

 한국은 의정서 체결 당시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그동안 이산화탄소 할당량을 지정하지 않았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4년 기준 5.9억t. 세계에서 열 번째로 많은 수치다. 따라서 2013년 후에는 의무감축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탄소 시장을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래 어떻게 이뤄지나=탄소 거래는 의정서에 따라 이산화탄소 1t 단위로 이뤄진다. 1t 가격은 유럽연합(EU) 시장에서 8~10유로(1만원대)에, 높을 때는 30유로(3만8000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5000원 선이 될 전망이다.

 거래 과정은 약간 복잡하다. A기업의 배출량이 연간 100t이라고 하자. A사가 온실가스를 연간 10t 줄이겠다고 정부(에너지관리공단)에 신고하면 검증 절차를 거쳐 할당량을 지정받는다. A사가 배출량을 30t까지 줄이면 정부는 현장 실사를 통해 20t의 배출권을 A사에 준다.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량을 연간 50t 할당받은 B사가 30t을 줄이는 데 그쳤다면 목표치보다 20t을 초과한 데 대한 과징금을 물어야 한다. B사는 탄소 시장을 찾아 A사로부터 20t의 배출권을 구입해 목표치 50t을 채워야 한다.

 A사는 이산화탄소를 줄여 돈으로 보상받고 B사는 과징금보다 저렴한 배출권을 사서 목표치를 채운다. 정부는 탄소 시장을 통해 배출 총량을 유지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배출권은 주식처럼 거래되기도 한다. 배출량을 효율적으로 감축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업에 투자하는 ‘탄소 펀드’ 등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탄소 펀드가 도입됐다.

 ◆풀어야 할 숙제=온실가스 배출량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두고 미국과 EU가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EU는 온실가스 의무 감축에 적극적인 반면 미국은 2001년 자국 산업 보호란 명목으로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탈퇴했다. 최근 미국은 이산화탄소 배출 상위 15개국 회의를 제안해 놓은 상태다.

 탄소 배출권이 온실가스를 무분별하게 배출하는 국가 또는 기업에 ‘면죄부’를 준다는 주장이 있다. 이를 테면 100t짜리 배출권을 산 기업은 할당량을 채울 때까지 온실가스를 모두 배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본부의 안준관 부장은 “탄소 배출권이 주식처럼 거래되면 이윤 추구 논리에 환경문제가 묻힐 가능성이 높다”며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거두려면 다양한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가 전 세계에 적용될 경우 선진국보다 개발도상국이 더 피해를 볼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탄소 배출 억제 기술이 떨어지는 개도국의 경우 부담해야 할 비용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그동안 환경을 오염시켜 온 선진국의 책임을 개도국이 고스란히 떠안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견해도 없지 않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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