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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때 더 빛난 '황제 노련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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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페더러가 우승을 확정짓는 순간 코트에 주저 앉은 채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하고 있다. [뉴욕 AP=연합뉴스]

일곱 번의 세트 포인트 찬스를 날렸다면? 트리플 브레이크 포인트(0-40)의 기회를 놓쳤다면?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의 영광도, 우승상금 140만 달러(약 13억원)도 모두 뉴욕의 밤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굴러온 복을 제 발로 차버린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세계랭킹 3위)에겐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모든 실수도 상대가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26.스위스.세계랭킹 1위)였기에 용서받을 수 있다.

페더러는 10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에서 끝난 US오픈 테니스 남자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를 3-0(7-6,7-6, 6-4)으로 꺾고 2004년 이후 4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다. 조코비치에겐 아쉬운 순간이었으나 메이저 챔피언이 되기엔 2%가 부족했다. 이제 스무 살의 나이로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결승전에 출전한 그에게 메이저 대회에서만 11차례 우승을 한 페더러는 커다란 벽일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윔블던 이후 10개 메이저 대회 연속 결승에 오른 페더러는 두둑한 배짱과 노련미로 고비를 극복했다. 메이저 12승을 거둔 페더러는 통산 최다 메이저 우승(14회.피트 샘프러스) 기록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1세트가 분수령이었다. 게임스코어 5-5에서 페더러의 서비스 게임을 따낸 조코비치는 자신의 서비스 게임에서도 40-0까지 앞서갔다. 한 포인트만 따면 1세트를 가져오는 순간이었다. 테니스 팬들은 성급하게 새로운 영웅 탄생을 점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노련한 페더러는 다섯 차례의 세트 포인트 위기를 모두 벗어나 6-6을 만들었고, 결국 타이브레이크에서 7-4로 이겼다. 2세트에서도 조코비치는 4-1까지 앞서며 두 번의 세트 포인트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또 타이브레이크까지 끌려갔고 2-7로 졌다. 1, 2세트 타이브레이크 승리로 페더러는 메이저 대회 결승전 타이브레이크 13승2패(승률 87%)라는 무서운 집중력을 과시했다.

페더러는 "새로운 친구들이 도전하는 것이 내가 테니스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라며 "중요한 순간 조코비치의 실수가 많았다"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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