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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북상족 (北上族) 일자리 찾아 '본토로 본토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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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홍콩엔 '북(北)'자가 들어간 유행어가 많다. '북'은 중국 본토를 가리키는 은어다. 대낮에 주택가 골목에서 몸을 파는 중국 여인들은 '북고'(北姑)며, '얼나이'(二.첩)를 찾아 광둥(廣東)성 선전(深) 등지로 올라가는 것은 '북상'(北上)이라고 한다. 모두가 부정적인 의미다.

그러나 이젠 '북'의 의미가 달라졌다. 중국인의 지위가 '못사는 동포'에서 '황금알을 낳아 주는 사촌'으로 격상됐기 때문이다. 자연 '북상'의 의미도 달라졌다. 이제 북상은 돈벌 기회를 찾아 중국에 가는 것을 뜻하는 용어가 됐다.

홍콩 주민 장샹민(張向民.43)은 대표적인 '북상족(北上族)'이다. 張은 2년 전만 해도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면서 월 4만홍콩달러(약 6백만원)를 받았던, 잘나가는 월급쟁이였다. 그러나 BOA가 컴퓨터 업무를 싱가포르로 옮기면서 그는 실직했다. 그러나 張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기의 능력을 비싸게 사줄 중국 기업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 화샤(華夏)은행이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그러나 대우(월 1만5천위안.약 2백10만원)가 시원찮아 거절했다"고 그는 말했다. 張은 몸값을 올리기 위해 요즘 중국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를 배우고, 시티(城市)대에서 정보기술(IT)분야의 MBA 과정도 밟고 있다.

홍콩의 실업률은 최근 떨어지고 있으나 기회를 찾는 북상족의 숫자는 여전히 증가 추세다. 지난해 말 현재 전체 취업인구(3백48만명)의 7%인 23만8천2백명이 북상족으로 집계됐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이전보다 두배나 늘었다.

중국 기업 역시 홍콩인들을 선호하고 있다. 홍콩인들의 외국어 능력, 선진경영 노하우, 개방적인 감각 등이 기업 발전에 요긴하기 때문이다. 국유기업인 중국대외무역운수그룹은 지난해 12월 7명의 간부를 공모하면서 홍콩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재무 전문가 황비례(黃必烈)를 부사장으로 발탁했다.

상하이(上海) 시정부는 최근 '홍콩의 각계 전문인력 1천명을 스카우트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의사.주방장.식당 매니저.금융 전문가 등 각계 인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홍콩 인력에 대한 대우는 월평균 1만5천위안 수준이다.

중국 정부도 올해부터 자영업과 법률.회계.금융.물류 등 18개 직종의 창업과 취업을 홍콩인들에게 대폭 허용했다.

문제는 언어다. 광둥어를 쓰는 홍콩인들에게 푸퉁화는 외국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북상족의 80%는 광둥어가 통하는 광저우(廣州).선전.둥관(東莞) 등지에 몰려 있다. 홍콩과 다른 중국의 문화와 습관.정치체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도 숙제다.

북상 열풍은 홍콩 대학의 강의 목록까지 바꿔놨다. 리궁(理工)대 산하의 홍콩 인터넷학부(HKCyberU)와 침례대학.공개대학 등 수십 곳에서 '북상을 위한 법률.무역.금융.부동산 강좌'를 잇따라 개설했다. 리궁대의 경우 상하이 화둥(華東)대와 손잡고 중국의 제도와 관행을 가르친다. 강좌당 4천5백~6천5백홍콩달러(약 68만~98만원)의 '고가 수업료'를 받지만 예약해야 할 정도로 수강생이 밀려들고 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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