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내리기(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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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원래 한자의 기원에서 본다면 「핍」자는 「정」자의 반대개념이다. 과녁의 중앙을 「정」이라 했다. 여기에 조개패 부수를 붙이면서 「폄」자가 돼 옳지 않게 남을 깎아내리는 말을 뜻하게 된다.
우리네 가장 나쁜 습관중 하나가 뒤에서 남의 말하기다. 뒤에서 하는 말이 칭찬일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남을 헐뜯거나 씹는 말이다. 칭찬보다는 비방이고,옮게 말하기 보다는 사시적으로 판단하고,이 잘못된 판단에 따라 남을 비난하고 욕하고 깎아내린다. 이를 「폄」이라고 부른다. 최근 총리 퇴임을 둘러싸고 나오는 가십성 보도를 보노라면 남을 폄하는 나쁜 습관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 같아 불쾌한 기분이 든다. 총리재임때는 「대쪽총리」고 「원리원칙에 충실한 총리」라고 온갖 수사를 다 붙이더니 사표를 낸 다음날부터 실은 알고 보니 이런 저런 흠집이 있는 분이라는 깎아내리기성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고교 선·후배 중심의 패거리 정치를 했다는 가십성 기사가 뉴스원도 분명치 않게 나오는가 하면 그 다음에는 총리로서의 위신을 너무 챙겨 과잉 경호로까지 발전했다는 음악회장의 경호 에피소드까지 소상하게 등장한다. 아무리 문민시대라 한들 이런 저런 근거없는 가십이 총리사임과 함께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듯 퍼지는 걸 보면 이는 심상치 않은 어떤 조짐같이 걱정이 앞선다.
뒤에서 등 찌르는 식의 이런 움직임이 과연 조직적인 것인지,아니면 평지돌출로 나온 말인지,또는 보도대로 알고보니 그런 저런 사례가 실제로 많았는지 그 모두가 분명치는 않지만,하나 확실한 일은 적어도 이런 음해성 비하 발언은 그 출처가 어디든 중단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총리 비하는 곧 대통령에 대한 비하로 연결될 수 있고 이는 곧 국민전체에 대한 비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총리 퇴임방식이 워낙 좋지 않은 모양새를 띠었는데 여기에다 불건전한 비하성 가십까지 이어진다면 이는 국민전체를 깎아내리는 국민적 비하가 되는 동시에 음해와 비하라는 불건전한 사회풍조를 조장하는 결과까지 낳게 될 것이다.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내가 올라가는게 아니라 남을 칭찬함으로써 내가 올라간다는 평범하면서도 건전한 생활철학이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도 뒤에서 남을 깎는 폄성 발언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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