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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 마에스트로" 10만 명 기립박수로 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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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활달한 풍모와 열정적인 무대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았던 .하이C의 제왕.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8일 오후 자신의 고향인 이탈리아 모데나의 성당을 떠나 운구되고 있다. [모데나 AP=연합뉴스]

'차오(잘 가오), 루치아노'.

모데나의 성당에서 열린 장례식 직후 이탈리아 공군이 파바로티의 마지막 가는 길을 기리는 추모비행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거장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해바라기가 그의 곁에서 활짝 웃고 있었다. 네 살배기 딸 앨리체가 그린 그림이 머리맡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천상의 목소리'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무대 의상인 검정 턱시도 차림으로 편안하게 누워 있었다. 트레이드 마크인 흰 손수건을 꼭 쥔 채, 황금색 높은음자리표가 수 놓인 붉은 천을 덮고. '마에스트로(거장)'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는 물론 전 세계에서 찾아온 애도 행렬로 이탈리아 북동부의 작은 도시 모데나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다.

◆"고향에서 편히 잠드소서"=그가 세상을 떠난 6일 오후부터 모데나 성당에서 그의 시신이 공개됐다.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애도 행렬은 10만 명이 넘었다. 인구 18만 명의 도시 모데나의 호텔 방은 동이 났다. 레코드점의 파바로티 음반도 모두 팔려나갔다. 시내 상점 유리창에는 파바로티의 사진과 '잘 가오, 루치아노(Ciao, Luciano)' '거장이여 안녕히(Addio, Maestro)'라고 쓴 초록색 종이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모데나 시민들은 "우리의 상징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7일 모데나 성당을 찾은 파비오 멜자니(50)는 "모데나의 자랑은 셋이었다. 토르텔리니(파스타의 일종)와 명품 자동차 페라리, 그리고 파바로티인데 그중 하나를 보냈다"고 말했다. 모데나 시민 루치아 프란디(34)는 "그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했지만 마지막은 모데나에서 맞기를 원해 고향에 있는 자신의 집에 돌아왔다. 우리 모데니시(모데나 시민)들은 이 점에 감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데나 성당 앞 광장에서는 오전 6시부터 자정까지 그의 노래가 쉬지 않고 흘러나왔다. 조르조 피지 시장은 "그가 매년 자선 콘서트를 열던 '모데나 극장'의 이름을 '파바로티 극장'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모데나의 성당 광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서 ‘거장이여 안녕히’라는 자막과 함께 파바로티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다. [AP=연합뉴스]

◆생전의 파바로티 떠올리게 한 장례식=8일 오후(현지시간) 900년 역사의 모데나 성당에서 장례식이 시작됐다. 장례미사가 열린 성당에는 700여 명만 입장할 수 있었다. 나머지 5만여 명의 추도객은 성당 밖 광장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을 보며 '20세기 최고의 테너'가 가는 길을 지켰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안에 모인 파바로티의 지인들은 조용히 서로를 위로했다. 2층에 앉은 합창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돔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 내부에 은은한 소리를 울렸다.

그는 자신의 장례식이 밝은 분위기에서 치러지길 원했다. 식이 시작될 때 이탈리아 국기와 모데나의 휘장을 들고 들어온 이들은 그가 가장 좋아했던 축구팀 유벤투스의 선수들이었다.

이날 장례식에는 전 유엔 사무총장 코피 아난, 이탈리아 총리 로마노 프로디를 비롯해 파바로티와 함께 자선공연 등을 했던 록그룹 U2의 리더 보노 등이 참석했다. 파바로티와 여러 차례 공연한 불가리아의 소프라노 라이나 카바이반스카(73)가 떨리는 목소리로 베르디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이어 이탈리아인들이 '차세대 파바로티'로 꼽는 시각 장애인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49)가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육신을 입은 예수를 찬양하는 종교음악)'를 불렀다.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조사에서 "파바로티는 세계의 마음을 움직인 이탈리아의 외교관"이라고 말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영상 메시지로 "신이 내린 재능의 소유자"라며 추모의 뜻을 전했다.

그가 좋아한 해바라기와 그의 사랑을 뜻하는 장미로 장식된 관이 운구되기 시작했다. 스피커에서는 그의 대표곡인,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하이라이트 부분이 흘러나왔다. 150kg이 넘는 거구에 항상 웃는 얼굴로, 무대에서는 뜨거운 열정을 발산하던 '빅 루치아노'를 떠올리며 추도객들은 눈을 감고 가슴에 손을 얹었다. 관이 옮겨지는 동안 성당 내부와 광장에 모여 있던 추도객들은 모두 일어서 긴 박수로 거장에 대한 예의를 표했다. 파바로티에게 보내는 마지막 기립박수였다.

파바로티의 시신은 모데나 인근 몬탈레 란조네 묘지에 안치됐다. 그의 부모, 유산된 아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모데나(이탈리아)=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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