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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의 안보관」 되새기자/북핵 어떻게 볼 것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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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선 특사교환 철회 우리입지 좁아져/정부 위기관리체제 보강 주력해야
1939년 9월3일이 영국인들의 뇌리속에 박혀있는 이유는 두가지다.
체임벌린 내각의 유화정책이 끝내 실패로 입증되자 대영제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 날로서 의미가 있으며,또한 윈스턴 처칠이 10년의 정치망명을 청산하고 내각에 복귀한 날이기 때문이다.
처칠은 그가 제1차 세계대전때 관장했던 해군성을 재장악하는데 성공했고,8개월후 드디어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되었다.
처칠의 전시 지도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나 그의 은둔생활중 약 1만장의 글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아마추어 역사학도였던 처칠은 그의 가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의 서양사를 탐구했으며,특히 외교사와 전쟁사에 주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시절부터 전쟁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칠의 최대 업적은 그의 두번에 이은 수상경력 보다는 나치정권 탄생이후 독일의 급속한 재무장과 유럽에서의 전쟁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피력한데 있다고 보여진다. 처칠은 온갖 수모와 모략속에서도 영국 국민들에게 히틀러의 근본적인 위협과 유화정책의 한계를 역설했다. 결과론적으로 처칠의 외로운 사이렌 소리 때문에 영국은 승전할 수 있었으나 영국의 전시 대비 태세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작금의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국정부의 통일·외교·안보정책 조율을 보았을 때 처칠의 안보관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하겠다.
물론 당시의 유럽과 오늘의 한반도 상황을 동일선상에서 취급할 수도 없고,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안보 불감증과 정부의 안이한 태도는 일치한다고 보여진다. 현 정부는 북한의 핵과 씨름한지 1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대응책은 여전히 안개속에 싸여 있으며 정부내의 불협화음은 결국 이회창 전 총리의 경질로 극대화되었다.
정부의 후속인사가 예상되지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대북 정책의 향방과 궁극적으로 북한 핵문제 종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견의 일치다. 현 정부는 대화와 설득외교로 북한의 정상화를 추구해왔으나 북한 핵무장 계획의 저지와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행위자로 전환시키는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핵문제는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권력유지와 직결되어 있는 만큼 국제공조를 중심으로 한 대북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쉽게 핵무장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북한의 핵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추가사찰을 수용할 경우라도 자명한 사실은 특별사찰 없이 북한의 플루토늄 추출수준을 보다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렇다면 이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가 어떠한 차원에서의 경제 제재를 강행할 경우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즉각 탈퇴할 것이며,미국과 국제사회는 사실상 북한의 핵문제를 통제할 수 있는 명분이 약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1년간 북한 핵 대응책을 강구하면서 나타난 현상중 하나는 선택의 폭이 차차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정부는 남북 특사교환 카드를 북한의 비협조적 태도로 인해 철회한 상황이며 한미 공조체제도 사실상 레토릭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문제는 필연적으로 유엔의 차원에서,아니면 미국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해결될 수 밖에 없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한국정부의 기본적인 대북관과 국제공조의 실질적인 참여도라고 보여진다.
만일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유엔 안보리가 대북경제 제재결의안을 통과할 경우 한국정부가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인지는 솔직히 의문시 된다. 또한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을 근본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무력 제재를 강구할 경우 분명한 사실은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한국 정부는 이제 북한의 핵무장을 묵인하거나,아니면 국제공조에 철저히 동참하는 길 밖에 남지 않았다.
물론 국민과 정부는 이번 핵문제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되길 갈망하고 있으나 김일성 체제의 마지막 단계속에서 대두되고 있는 북한 핵문제는 불행히도 북한내부의 변화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정부는 위기관리체제의 보강과 제반의 억제력 강화에 주력할 필요가 다분히 있으며,북한의 핵문제가 신한국 창조의 결정적인 시험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이정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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