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프리즘] 범죄도시 뉴욕이 확 바뀐 이유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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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 12면

1985년 겨울 뉴욕을 방문했을 때다. 맨해튼으로 가기 위해 링컨 터널을 빠져 나오는 순간 빨간 신호등으로 바뀌었고 차를 멈췄다. 그런데 갑자기 20대 초반의 흑인 남자 2명이 다가왔다. 신호를 무시하고 그냥 달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흑인 남자들이 차 앞 유리창에 냅다 침을 뱉었다. 그들은 옷소매로 유리창을 닦은 다음 손을 내밀었다. 나는 1달러짜리 하나를 건네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뉴요커들은 이럴 때 자동차 와이퍼를 최고 속도로 작동시켜 구걸을 요령껏 피한다고 했다.

당시 뉴욕은 ‘범죄 도시’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시민들은 혼자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엄두를 못 냈다. 자동차에서 내릴 때 차에 장착된 카세트 플레이어를 갖고 내릴 정도였다. 동전 하나만 승용차 좌석에 떨어져 있어도 유리창을 깨고 가져가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한 한인 동포는 1년 동안 강도를 세 번이나 만났고 남자인데도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삶의 질도 형편없었다. 뉴욕의 지하철역은 술과 마약에 찌든 노숙자로 넘쳐났고 오물이 방치돼 악취가 진동했다.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은 매춘부와 마약 판매상 천지였다.

97년 박사과정을 마치기 위해 두 번째로 뉴욕을 찾았다. 그런데 다시 찾은 뉴욕은 예전의 음침한 도시가 아니었다.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은 유명 브랜드를 취급하는 상점과 뮤지컬 극장들이 들어서 화사하게 바뀌었다. 지하철역을 장악하고 있던 노숙자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이런 외형적인 변화는 범죄지표로도 확인됐다. 93~98년 뉴욕의 살인 사건은 67% 감소했다. 강도는 54%, 절도는 53%가 줄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했을까? 94년부터 96년까지 뉴욕경찰청장을 지낸 윌리엄 브래튼 청장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 미국인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브래튼 청장은 무례한 행동이나 사소한 무질서가 중대한 범죄로 발전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큰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작은 위반 사항부터 적극적으로 경찰활동을 펼쳤다. ‘깨어진 창(Broken Windows)이론’과 ‘무관용(Zero-Tolerance)이론’을 현장에 적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컴스탯’(Compstat·컴퓨터를 통한 범죄통계 분석시스템)과 같은 첨단 범죄관리 체계를 도입했다.

일부 학자는 뉴욕의 범죄가 줄어든 것이 경찰이 잘해서가 아니라 실업률이 줄고 청소년 인구가 감소하는 등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들도 브래튼 청장의 역할이 범죄 감소에 기여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 범죄로 골머리를 앓던 영국에서 런던 경찰청장으로 브래튼을 스카우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 정도다. 경찰 총수가 조직을 장악하고 리더십을 보이면 치안이 크게 개선될 수 있음을 브래튼 청장은 보여주고 있다. 최근 조직 내분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찰 상황을 생각하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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