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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인간을 발견하다- 제9중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호 14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든 1988년, 몇 명의 소비에트 젊은이들이 전선으로 떠난다. 무기와 전쟁의 미학을 찬미하는 화가 지오콘다, 어린 딸을 두고 온 스타쉬, 외모부터 강인해 보이는 류타예프 등이 그들. 지옥 같던 훈련을 마치고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제9중대원들은 선임병들을 싣고 이륙한 헬기가 격추당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들 앞에 진정한 지옥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제9중대’는 1989년 1월에 있었던 자르단 고지 3234 전투가 소재인 영화다. 감독 표도르 본다르추크는 제1차 체첸 사태를 보며 잊혀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떠올렸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10년에 걸쳐 낯설고 먼 땅 아프가니스탄으로 어린 소년들을 보낸 우리 정부의 끔찍한 행위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제9중대’는 제작비 900만 달러가 들어간 대작임에도 전쟁의 스펙터클에 몰두하기보다는 그 풍경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작은 인간의 모습 하나하나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영화의 군인들은 무자비한 소비에트 군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 소년을 차마 쏘지 못하고 돌아서다가 그 아이에게 사살당하고, 총알이 쏟아지는 전쟁터의 공포를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수류탄을 물어뜯어 자폭하고, 죽은 전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입술을 깨문다. 설사 살아 돌아간다고 해도 그들은 이 지옥을 잊지 못할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새 신부를 두고 온 코코린은 답한다. “술을 마실 거야. 더 마실 거고, 더 마실 거야.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잊을 때까지.”

국지전과 백병전을 세밀하게 재현하는 ‘제9중대’는 아프가니스탄 군대 무자헤딘을 바라볼 때만은 무뚝뚝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돌변한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공격전을 수행하는 그들은 침략당한 땅의 주민들이라기보다 공포라고는 모르는 지옥의 군대로 보인다. 똑같이 겁에 질린 젊은이들이었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독일 군대가 인격을 거세한 물체처럼 보였듯이. 그것이 ‘제9중대’가 전하는 반전(反戰) 메시지의 안타까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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