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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지가 허상에 불과하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6호 20면

한때 종교와 철학과 예술이 사회를 변화시키던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는 낡은 체제와 관념에 의문을 품는 행동이 저항과 변혁으로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 급진적인 학문은 자연과학일지도 모른다.

과학적인 지식에 기반해 영혼과 뇌와 생명과 사랑처럼 형이상학적인 영역이라 간주되었던 주제들을 새롭게 보는 시선은, 형이상학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경계에 다가가 있기 때문이다. 원제가 『What Is Your Dangerous Idea?』인 『위험한 생각들』에서도 이런 ‘생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제안으로 웹진 ‘엣지’는 학문의 다양한 분야를 이끄는 지식인 110명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사회적·윤리적·정서적으로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 과학적으로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으로 올바르기 때문에 위험한 생각은 어떤 것이 있는가?” 몇 페이지에 담기에는 버거운 사고이지만 『위험한 생각들』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는 위험한 사고를 펼쳐 놓고 있다.

소제목들만 보아도 『위험한 생각들』은 도발적이고 신랄하다. ‘사회 상대성 이론-평등한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부자에게 유리한 것이라고 여겨졌던 사회적 불평등이 모두에게 좋지 않은 개념이라 주장한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행위의 책임을 인간에게 물을 수 있는가’는 인간의 뇌가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미세한 시간 차로 무의식이 행동을 준비한다는 실험 결과를 끌어들이면서 제목과 같은 질문을 반복해 묻는다. 범죄자가 아닌 범죄의 유전자를 심판해야 한다면서,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로 비난받았던 유전자 조작과 통제를 주장하는 생각도 있다.

110명이나 되는 석학을 망라하고 있는 탓에 『위험한 생각들』에서는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되는 글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분량이 지나치게 짧은 것도 부담이다. 그러나 『위험한 생각들』은 어디까지나 질문일 뿐이다. 생명의 가치를 논할 때 인간을 중심에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잣대로 진실을 외면해 왔던 것은 아닌지, 이 책으로부터 생각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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